생명보험회사들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로 한바탕 몸살을 앓았다.

업무가 한동안 마비됐을 정도였다.

일단 수많은 서류가 공정위에 압수됐다.

해당 기업이 동의했다고 하지만 공정위 요구를 함부로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개인 이메일을 깡그리 뒤지는가 하면 대면조사를 지나치게 반복하면서 해당 직원들은 아예 업무를 보지 못했다.

시중 은행들은 지난 6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자동화기기 이용료 담합 혐의 조사를 한다며 수천 쪽에 이르는 자료를 한꺼번에 요구해 와 골머리를 앓았다.

때마침 금융감독원이 대출 업무에 대한 검사를 벌이던 터.본점 직원들은 '겹치기 조사'에 다른 일을 전혀 하지 못했다.

제약업체 리베이트 조사에서는 관련도 없는 부서의 서류까지 요구해 직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기업 압박하는 공정위

은행 보험 신용카드 정유 석유화학 제약 유통 자동차 인터넷포털 통신 교복 학원 부동산중개업소 케이블TV….

전 산업계가 공정위의 무차별적 조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제력 집중 억제에 주력하던 공정위가 경쟁 촉진,소비자 정책,중소기업 경쟁기반 확보 등의 업무를 강화하면서 무차별적인 조사에 나서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각 부처의 조사와 감독에 피곤한 기업들은 공정위의 가세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올초 공정위는 제약사 조사에 착수해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병원 리베이트 관행을 해결한다는 명분에서이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위기에 처한 제약업계는 "부담만 커지고 있다"고 하소연이다.

공정위가 최근 조사에 착수한 분야만 해도 광고 엔지니어링,외국계 기업 부당 약관,종합병원 특진제 등 일일이 손에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금융업종에선 은행 생보사 손보사 신용카드사 자산운용사 증권사 등이 줄줄이 엮여 있다.

영화 업종에서도 투자사 배급사 영화관은 물론 극장 내 매점까지 공정위의 조사를 받지 않은 영역을 찾기 힘들 정도다.

권오승 위원장은 문어발식 조사로 인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불만을 어루만지기는커녕 외부 강연과 방송 출연 등을 통해 '이 업종을 조사하겠다,저 업종을 살펴보겠다'며 조사 대상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

◆조사 결과는 '아니면 말고'

공정위가 길게는 1년 넘게 조사만 해놓고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에 따라 무혐의로 밝혀진 기업들은 공정위 조사에 협조하느라 입은 업무 손실은 누가 보상하느냐며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SC제일은행 사례가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10월부터 이 은행의 부당내부거래 행위를 조사한다며 은행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지만 결국 지난달 나온 결론은 무혐의 처분이었다.

은행 관계자는 "조사 기간 중 업무 손실과 직원들이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은행의 몫"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당초 6월 말까지 마무리 짓겠다며 시작한 인터넷 포털에 대한 조사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토플을 실시하는 한·미교육위원회에 대한 조사도 성과 없이 시간만 가고 있다.

공정위는 최근 조사 시한을 연장하고 거듭 업체들을 압박하고 있지만 공정위 내에서조차 "너무 벌여 놓은 일이 많아 효율적인 조사가 힘들다"고 토로하고 있을 정도다.

그때 그때 터져 나온 이슈에 맞춰 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지시하면서 조사에 착수하는 경우도 많다.

상조업계 약관 조사나 대부업,종합병원 특진제 조사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처럼 충분한 준비 없는 조사 착수가 결국 기업들의 불필요한 조사 부담만 키우고 행정력 낭비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