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력 있는 광기.'

소설 '돈키호테'가 400여년 동안이나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압축적으로 담은 말이다.

또한 극화된 '돈키호테'를 연기한 모든 배우들이 고민한 내용이기도 하다.

특히 음악이 극의 주제를 희석시킬 가능성이 높은 뮤지컬에서는 배우의 영향에 따라 자칫 이 '광기'가 미친 노인이 벌인 단순한 해프닝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그런 점에서 내달 2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맨 오브 라 만차'(원제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로 더블캐스팅된 조승우씨와 정성화씨의 연기는 성공적이다.

역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능청스러운 연기 안에 녹아들어 조씨와는 또 다른 돈키호테를 탄생시켰다.

돈키호테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키기 때문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 누구를 미치광이라 부를 수 있겠소? 꿈을 포기하고 이성적으로 사는 것이 미친 짓이겠죠"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미치기를 '선택'한 돈키호테의 심리를 호소력 있는 연기로 잘 전달한다.

자신이 힘없는 노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돈키호테를 표현할 때에는 180㎝에 가까운 큰 키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무게감 있으면서도 경쾌한 음색은 극에 활기를 불어넣고 작품 전반에 흐르는 플라멩코 선율과도 잘 어울린다.

물론 두 주연배우 중에서 뮤지컬 스타인 조씨의 공연이 팬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있긴 하다.

하지만 조씨의 무대는 뛰어난 연기에도 불구하고 열광적인 팬들로 인해 자칫 '조승우 콘서트'로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하다.

조연들의 연기도 무난하다.

충직한 몸종 '산초'를 연기한 권형준씨는 귀여운 느낌을 더한다.

돈키호테가 사랑하는 여인 알돈자를 맡은 김선영씨의 연기는 거칠면서도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정성화씨가 노래부를 때 간혹 '늙은' 돈키호테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젊은' 분위기가 묻어난다.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내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정성화'만의 유쾌함이 조금은 죽은 느낌도 든다.

김선영씨의 고음 처리 부분에서는 힘이 약해지는 것이 확연하게 들린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