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현지에 파견된 한국 정부 대표단과 한국인 인질 21명을 억류 중인 탈레반 무장세력이 가시권에 들어온 대면협상에서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한국 정부가 인질-수감자 맞교환을 완강히 거부하는 아프간 정부와 '테러집단에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는 미국 정부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처지라는 것을 탈레반은 익히 알고 있는 터다.

그럼에도 탈레반이 대면 협상을 원했다는 것은 창의적인 접근 여부에 따라 명분과 실리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 정부도 협상기간에는 최소한 추가 피살을 차단하고 시간을 벌 수 있게 된다. 양측이 카드로 올려 놓을 수 있는 시나리오는 대체로 세 가지 정도다.

◆위중한 여성 인질 2명부터 석방 요구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여성 인질 2명의 건강상태가 위중해 그대로 두면 사망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면서 탈레반 수감자 중 아무나 2명을 풀어주면 이들 인질을 석방하겠다고 밝혔다. 양측이 얼굴을 맞댄다면 이 문제가 최우선적인 논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탈레반은 위중한 2명을 방치했다가 사망하면 살해와는 또 다른 도덕적 지탄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아프간 의료진의 인질치료는 탈레반의 불허로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디가 "수감자 중 아무나 2명"이라고 조건을 낮춘 것은 탈레반이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임을 시사한다. 한국 정부가 이런 틈새를 파고 들 경우 의외의 결과를 이끌어 낼 가능성도 없지 않다. 탈레반은 병자 석방이라는 인도주의적인 명분을 얻어 추후 협상력을 더욱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게 된다.

◆인질 몸값 지불

한국인 피랍 이후 돈이 목적이 아니라는 게 탈레반의 거듭된 주장이었으나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다. 인질 죄수 맞교환이 불가능한 만큼 몸값 협상으로 국면을 유도한다는 안이다. 실제 탈레반이 지난해 10월 이탈리아인 사진기자 가브리엘레 토르셀로를 납치했을 때 석방조건은 200만달러가량의 몸값이었다. 이어 지난 4월 납치했던 프랑스인 여성 구호요원을 석방한 사례도 있다. 명분은 "여성이기 때문에 석방한다"는 것이었지만 뒷거래가 있었다는 것이다.

유사한 미국 사례도 있다. 지난해 1월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지의 질 캐럴 기자가 이라크에서 납치된 지 20여일 지났을 때 미군 당국은 테러 등의 혐의로 억류됐던 이라크인 400여명을 석방한다고 발표했다. 미군은 이라크인들의 석방이 캐럴 기자의 석방과 무관하다고 강조했지만 이후 미 언론에서는 100만달러 정도의 몸값이 전달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몸값 흥정과 거래는 성사 후 철저히 비밀에 부치면 된다. 단,섣부른 금전거래는 향후 몸값을 노린 다른 한국인 납치를 더욱 부추길 수 있어 큰 부담이다.

◆사면 통해 수감자 우회 석방 추진

아프간 정부를 설득해 탈레반 수감자 중 중량감이 낮은 인물을 선택적으로 석방하고 이에 상응하는 수의 피랍자를 맞교환하거나,탈레반 수감자를 사면해 우회 석방하는 안으로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낮다.

아프간 권위지인 카불 위클리의 파힘 다슈티 편집장은 최근 국내 모 언론에 이 같은 접근법을 제시했다. △탈레반 고위층이 아닌 하위층 수감자 석방 △비전투요원ㆍ여성ㆍ미성년 죄수 석방 등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 물론 탈레반이 1차 석방자로 지명한 8명의 수감자는 최고위급은 아니지만 남성 지역사령관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CSM지 질 캐럴 기자의 경우는 수감자 우회 석방으로 풀려난 사례로도 꼽힌다. 미군 당국은 당시 400여명의 일반 이라크인 잡범 사면자를 풀어주면서 이라크 저항세력이 석방을 요구한 5명을 슬쩍 끼워 내보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