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2일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탈레반 납치 세력과의 협상에 들어갔다.

납치범들은 한국인 인질과 같은 수인 23명의 동료 석방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관건은 정부 대표단이 카르자이 아프간 정부와 미국이 통솔하는 동맹군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느냐 여부다.

정부의 인질 석방 노력은 미국·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현지 주둔군의 '대테러 전쟁'이라는 대의 명분과 충돌해 입지 확보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독일 정부가 같은 단체에 납치된 국민 두 명의 희생을 무릅쓰고 탈레반과의 협상을 거부한 것도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이다.

◆'테러리스트와 협상' 수용

조중표 외교통상부 제1 차관과 문하영 전 우즈베키스탄 대사,실무 지원단으로 구성된 정부 협상단은 22일 인도 뉴델리를 거쳐 오후 3시(한국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도착했다.

정부 대표단은 란긴 다드파르 스판타 아프간 외무장관과 동맹군 등 파병국들과 잇따라 접촉,협조를 요청했다.

조희용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무장단체 측과 몇몇 경로로 접촉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해 탈레반을 자처하는 납치 세력과 직접 협상도 불사할 것임을 시사했다.

정부는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겠다며 우왕좌왕하다 2004년 이라크에서 납치된 고(故) 김선일씨 피살을 막지 못했다.

정부 당국자는 "국민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가 동원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 협상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한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로이터통신에 전화를 걸어 "한국 정부 협상단의 아프가니스탄 방문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미국·아프간 정부에 협조 요청


정부 당국자는 무장 단체의 요구와 관련,"다각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신 보도대로 동료 석방이 궁극적인 목적일 경우에 대비,"아프간 정부와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탈레반 죄수 석방은 아프간 정부 소관이다.

아프간 정부는 지난 3월 2주만에 탈레반 재소자 5명을 석방하고 이탈리아 신문기자 1명과 맞교환했다.

국내 여론에 밀린 이탈리아 정부가 주둔군 철수를 암시하며 압박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사례는 탈레반의 납치가 활개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는 독일을 비롯한 파병국들의 이해도 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 두명이 같은 무장 단체에 인질로 잡힌 것으로 추정되는 독일 정부는 협상을 거부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제와서 우리가 해온 노력을 포기할 수 없다"고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무장단체는 21일 독일인 2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했으나 독일 정부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고 일축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날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무샤라프 현 파키스탄 대통령 정부의 대테러 활동을 언급하며 "알 카에다 및 탈레반 소탕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피랍 당시 안전 무방비

정부와 납치세력은 한국인 피랍자가 총 23명이라고 각각 정정했다.

납치 세력은 5명이 현지어를 구사해 18명만 한국인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정부도 샘물교회 자원봉사단 일행 중 도중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던 두 명이 행방불명 상태여서 함께 납치된 것으로 추정했다.

뉴욕타임스는 탈레반 대변인이 "한국인 23명 중 18명이 여자"라고 밝히고 "한국인들이 선한 무슬림을 개종시키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자들이 아니었다면 현장에서 처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카불발로 보도했다.

이슬람 문화권이 여성을 가해하는 것을 금기시한다는 것이 다행이고 피랍자들이 기독교 신자라는 점은 불안 요소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인들이 탈레반의 거점인 칸다하르로 무리한 육로 여행을 하면서 검문받기 싫다는 이유로 운전기사의 제안을 묵살하고 현지 경찰의 호위를 받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