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시 허핑리(和平里)에 있는 중의약대학 거리.학교 정문 건너편 다닥다닥 붙은 가게 중에서 유독 한 상점이 눈에 들어온다.

간판부터 실내장식까지 녹색으로 통일한 이곳은 카라카라라는 브랜드의 화장품 매장.한국인 이춘우 사장(47)이 작년 4월 창업한 매장으로 중국에서 처음 선보인 중저가 화장품 로드숍(프랜차이즈 형태의 거리매장)이다.

8평 남짓한 이 공간에 투자한 돈은 한국돈으로 3500만원.그러나 연간 매출 약 20억원,순이익은 약 5000만원에 달한다는 게 이 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이 밖에도 중국 주요 도시 곳곳에 24개의 '카라카라' 매장을 열었다.

카라카라가 베이징의 한국인 비즈니스맨들 사이에 주목받는 이유는 역발상이다.

중국의 소비시장 하면 떠오르는 게 '고품질,고가 제품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소득 계층의 폭발적 구매력에 주목한 세계 명품 브랜드들이 중국으로 몰려드는 이유다.

하지만 카라카라는 정반대로 중저가 시장에 올인했다.

이 사장은 "고가 제품 시장 인구가 2000만명이라면 중저가 제품 시장엔 적어도 6억명 이상의 소비자가 있다"며 "소득 수준 향상으로 중저가 시장을 구성하는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커지고 있는데 고급 시장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중저가 시장의 진입장벽이 낮아 경쟁자가 늘어나지만 시장 선점으로 이겨낸다는 게 그의 전략이다.

카라카라의 역발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국 유통시장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색채로 이미지를 통일하고 빈손으로 나가는 손님에게도 미소로 인사하는 종업원의 태도는 중국 업체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한국적 경영이다.

베이징 건영컨설팅 모영주 대표는 "카라카라는 백화점 중심으로 만들어진 화장품 시장을 깨고 로드숍을 도입해 저소득층의 소비를 끌어냈을 뿐 아니라 차별화된 판매전략으로 성공한 케이스"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중국의 시장 흐름을 꿰뚫어 차별화된 전략으로 승부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

상하이에 진출한 파리바게뜨는 점포에서 만든 빵으로 상하이 제과점의 트렌드를 바꾸었다는 평가다. 스포츠 캐주얼브랜드 EXR는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중국의 '소황제' 세대의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다. 해충 방지 업체인 세스코는 호텔 식당 등을 중심으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이 회사는 업소 구석구석 숨은 해충을 잡아내는 등 상하이에서 중국에는 없던 주거환경 시장을 새롭게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생활습관과 소득 수준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장 트렌드를 읽어내고 그 속에서 기회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소비재 시장에서만 새로운 마켓이 창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간재(부품 반제품) 시장 역시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세계공장' 중국 곳곳에 형성된 거대한 산업 클러스터(집적단지)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

중국 신식산업부에 따르면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휴대폰은 전 세계 생산량의 47%를 차지한다.

컴퓨터는 40%,TV는 48%가 중국에서 만들어진다.

완제품 생산이 많다는 얘기는 그에 필요한 부품 수요도 많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많은 부품업체들이 대형 업체 주변으로 몰려들고,자연스럽게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된다.

상하이 주변에 형성된 창장(長江)삼각주,광둥성의 주장(珠江)삼각주,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환발해경제권 등은 중국의 대표적인 산업 클러스터다.

이 같은 시장의 흐름을 읽고 대박을 터뜨린 게 하이닉스반도체다.

작년 10월 본격 가동에 들어간 중국 우시공장은 라인을 돌린 지 두 달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하이닉스가 작년에 약 2조500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데는 우시공장의 역할이 컸다.

하이닉스는 우시공장을 앞세워 중국 반도체 시장을 공략 중이다.

이미 중국 메모리반도체 시장 점유율 51%를 넘겼다.

특히 중국 최대의 IT(정보기술)·가전 산업단지인 주장삼각주 지역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클러스터 형성이라는 시장의 흐름을 파악,현지에 진출함으로써 광둥성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단숨에 석권해 버린 셈이다.

하이닉스 우시공장은 중국이 갖고 있는 또 다른 전략적 이점을 활용했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의 상계관세(수출보조금에 대한 보복관세)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 것이다.

우시에서 만든 반도체는 한국산이 아니기 때문에 상계관세 대상이 되지 않는다.

우시공장이 하이닉스 글로벌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하이닉스 우시공장의 서교석 총경리는 "하이닉스가 2004년 기술 유출 논란에도 불구하고 중국 진출을 결정한 것은 세계 전자산업 단지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것"이라며 "메모리반도체 공장이 없는 중국에 진출할 경우 빠르게 시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기술 보호냐,시장 선점이냐를 놓고 벌어졌던 논란 속에서 하이닉스는 시장 선점을 선택했고 그 전략이 성공했다는 얘기다.

KOTRA 중국본부 박한진 차장은 "세계 최고 명성을 가진 기업들이 모조리 들어와 경쟁하고 있는 중국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시장 진화와 함께 새로운 시장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 변화를 읽어 적극 대응하느냐 못하느냐가 중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느냐를 결정하는 절대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상하이·우시=한우덕 기자/조주현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