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버티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베이징 톈진 칭다오 상하이 우시 광저우 선전 등 본사 취재팀이 방문한 지역의 한국기업 대표들은 중국 비즈니스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쉰다.

치솟는 임금,정부의 끊임없는 환경규제,증치세(부가가치세) 환급 축소…. 하루하루 공장을 돌리는 것도 버겁다는 제조업체도 적지 않다.

하지만 모두 비관에 빠진 것은 아니다.

일부 회사들은 오히려 '한판 붙어볼 때가 됐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직원 5400여명을 고용하고 있는 광둥성 광저우의 임가공업체인 시몬느핸드백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3년 전 만해도 광둥성에 흩어져있는 수천 개의 임가공업체 중 하나였다.

싼 노동력으로 핸드백을 만들어 수출했다.

그러나 2000년 들어 이 지역에 인력난이 심화되고,임금이 오르면서 임가공사업은 한계에 이르렀다.

결국은 적자에 몰리게 됐다.




그러나 이 회사 박은관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단순한 임가공 제조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급 명품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생산키로 했다.

그는 기업경영 전반을 뜯어고치는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필요한 게 직원들의 기술교육이었습니다.

약 6개월 동안 직원들에게 품질관리 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했습니다.

그들의 근로 의욕을 살려주기 위해 급여도 주변 공장보다 20% 정도 더 줬습니다.

직원들의 기술 수준이 기대치에 올랐고,2003년부터 버버리,지방시 등 명품브랜드 업체에서 주문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회사는 덕분에 많은 봉제공장들이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 해 1억2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악화되고 있는 중국의 기업환경 변화에 맞서 고부가가치 전략으로 정면승부를 한 셈이다.

시몬느핸드백의 성공은 중국 비즈니스도 이제는 혁신이 요구되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악화되고 있는 기업환경에 맞서기 위한 '경영전반의 혁신'이 없다면 중국 사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박진형 코트라 중국본부장은 "노무비가 쌌던 과거에는 품질관리만 잘해서 외국으로 수출하면 됐다"며 "그러나 생산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지금은 제품을 고부가가치화하거나,생산비를 절감하는 등 생산성 제고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진출 기업의 혁신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우주일렉트로닉스 칭다오법인은 매년 10명의 현지 간부 직원들을 본사에서 근무토록 하는 등의 생산성 제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 직원이 참여하고 있는 혁신프로그램 덕택에 지난 1년 동안 생산성(생산량/인력투입시간)을 40% 이상 늘렸고,불량률을 5% 선에서 1%로 내렸다는 게 이 회사 김주철 법인장의 설명이다.

중국 칭다오에서 스타볼이라는 농구공을 만드는 스타코퍼레이션은 매년 20%의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기업.중국시장에서만 약 1000만달러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는 이 회사는 2000년 기존 중국 대리점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회사의 통제가 강하게 먹힐 수 있는 체제로 바꿨다.

조문형 칭다오법인장은 "중·고가 제품으로 중국 고급 소비자를 겨냥한 게 주효했다"며 "대리점 체계를 확 바꾸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지 진출 기업뿐만 아니라 본사에서도 중국 관련 비즈니스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갖고 있는 전략적 가치를 기업경영에 끌어들이기 위한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박근희 중국삼성 사장은 "중국이 갖고 있는 다양한 비교우위 요소를 기업 자원으로 적극 활용하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며 "임금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성,광활한 시장,고급 인력 등 다양한 중국의 가치를 연구하고 끌어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업체인 하이닉스는 중국의 신흥 산업클러스터(집적)시장을 개척해 성공의 싹을 틔운 대표적인 케이스.세계 반도체기업 중 처음으로 중국에 메모리제품 생산공장을 건설한 하이닉스는 해외 IT업체의 중국 내 공장에 반도체를 공급하며 중국 반도체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다.

최근 옌타이에서 조선 블록공장을 건설,사업에 들어간 대우조선해양은 중국의 저임 노동력을 기업경영에 끌어들이고 있다.

저임노동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이를 경영자원의 하나로 흡수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게임의 룰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15년간 한국에서 밀려나는 업종을 들고 들어와 저임금을 바탕으로 이익을 내던 게임의 룰은 용도폐기됐다.

새로운 게임의 룰은 전략적 사고와 혁신을 통해 경쟁에서 승리할 것을 요구한다.

일본 휴대전화업체들이 중국에서 일제히 철수한 것은 '일본제는 통한다'는 안일한 생각 속에서 전략적 사고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중국삼성경제연구소는 분석했다.

박승호 중국삼성경제연구소 소장은 "중국 진출 기업들은 지금 도태될 것이냐,아니면 전화위복의 계기를 잡을 것이냐의 기로에 서있다"며 "그 게임에서 이기는 길은 전략적 사고와 혁신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창출,새로운 게임의 룰에 얼마나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적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상하이.광저우=한우덕 국제부기자/조주현 베이징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