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저녁 7시 주중 베이징 북한대사관은 한국 특파원들에게 "공화국 대사관에서 26일 아침 9시에 기자회견을 개최한다"고 느닷없이 통보했다.

어떤 내용이며 누가 기자회견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중요한 일이니 와 보면 안다"는 말뿐이었다.

한국 특파원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외국 기자들도 이유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코델타아시아(BDA) 자금 문제가 풀렸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대표단이 이날 북한으로 들어가는 만큼 핵 문제에 관한 중대한 발표가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만 무성했다.

그러나 막상 시작된 기자회견은 전혀 딴판이었다.

도추지(58)라는 일본 태생 북한 주민이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4년 전인 2003년 10월18일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 납치됐었으며 일본에서 3년7개월을 살다가 탈출했다고 주장했다.

두만강에서 '못된 사람들'에 의해 지프에 태워졌다고 말했다.

매일 살인 사건이 신문에 실리고 사람과 사람 관계가 삭막한 일본이 싫고 고향의 자식들이 보고 싶어 탈출했노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의 말미에는 과거 만세 삼창을 부르던 것과는 달리 '우리는 장군님 식솔'이란 가사로 끝나는 '민족과 운명'이란 북한 노래를 불렀다.

질의응답은 물론 없었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기자회견이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납북자 문제 해결을 내세우고 있는 일본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도 납치하지 않았느냐'는 명분을 만들어 협상에서 대등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뜻이란 설명이다.

베이징의 북한대사관이 특파원을 불러 기자회견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들은 6자회담 중단,핵 발사 등의 주요 사건 직후 기자들을 대사관으로 불러 회견을 갖곤 했다.

그러나 말이 회견일 뿐 일방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통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자들의 질문은 아예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구미에 맞는 질문에만 답할 뿐이다.

한 일본 기자는 "북한 대사관은 작년 1월에도 이와 비슷한 기자회견을 열었다"며 "회견의 내용에 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나 기자들을 놀래키는 재주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