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왕이 아니다. 비록 그들이 수요 곡선이란 그래프 덕분에 파워를 얻었다손 치더라도 완전한 주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치밀하게 계산된 광고물들이 구매자의 선택권을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배 고픈 사람에게 쌀을 팔고 추운 이에게 옷을 제공하던 차원을 넘어섰다. 한결 우아한 세단과 고급 푸드,명품 의상,세련된 오락 등으로 확대,끊임 없이 인간의 욕구를 부추기고 있다. 생산과 수요의 권력은 이미 공급자의 것이다.'

지난해 타계한 존 갤브레이스의 유작 '경제의 진실'(이해준 옮김,지식의날개)은 에두르지 않는 직설 화법으로 미국 경제를 해부했다. 반역의 학자,자본주의의 도덕적 비판자라는 닉 네임처럼 시장 체제에 대한 진단이 날카롭다. 인간성 회복을 갈구했던 석학답게 불평등의 합리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저자는 거대 기업의 권력이 소유자,주주에게서 경영진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힘을 받은 경영자가 이사회 멤버들을 선출하고 낙점 받은 이사들은 회사 결정에 승복하는 역학구도를 그린다는 것. 엄청난 보수를 챙겼고 회사를 파멸로 몰았던 엔론 고위 간부들의 부도덕도 여기서 비롯된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이런 부정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당사자들도 당연시한다는 데 있다고.

'근로'라는 단어 뒤에 숨은 이데올로기,대기업 품에 안긴 관료주의,숫자 속에 감춰진 금융 사기,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현실 도피,베트남에서 이라크까지 드리운 군산 복합체의 그림자 등 정설을 뒤집는 논리가 예리하다. 104쪽,1만원.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