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파업인가. 무슨 일이 있어도 불법 정치파업은 안된다."

최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만난 노조원 K씨는 금속노조의 정치파업 방침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정치파업에 대한 현장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하다"며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에 도움이 되는 한·미FTA(자유무역협정)를 트집잡아 파업을 강행하려는 것은 노조원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하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현대차 노조 내에는 K씨처럼 정치파업에 등을 돌리는 분위기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정치파업이 조합원들에게 아무런 실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속 없는 파업 그만두라"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5월23일 현장대장정의 일환으로 현대차공장을 방문했을 때 조합원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왜 정치파업을 벌일 때마다 현대차노조만 선봉대에 내세우냐는 불만들이었다.

당시 이 위원장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노조원들은 "실속 없는 정치파업은 제발 그만두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이상욱 현대차노조 지부장도 5월 초 전국 지부장들이 참석한 금속노조 중앙위원회에서 "왜 제대로 참석도 하지 않으면서 총파업을 결정하는 것이냐.모두 참석하지 않으려거든 파업을 그만 두자"고 주장했다.

가뜩이나 국민 여론이 안 좋은데 명분 없고 실속 없는 파업은 삼가자는 뜻이다.

한·미FTA처럼 근로조건과 관련 없는 이슈로 길거리 투쟁을 벌여봐야 노조간부들만의 파업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변화의 기운은 현대차노조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현대차노조의 장규호 대외협력부장은 "여론도 노조에 등을 돌리고 있다"며 "과거처럼 막무가내식 파업을 벌였다간 큰코 다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노총의 공통투쟁전략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파업을 하는 경향이 있다"며 "잘못된 부분은 고쳐나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12월 합리적 노동운동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신노련(신노동연합)의 등장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정치투쟁에 몰두하는 노조간부들의 운동노선에서 탈피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게 신노련의 지향점이다.

비록 가입 인원은 100명 안팎으로 소수이지만 노조 내 투쟁노선에 정면으로 맞서 만들어진 조직이란 점에서 현대차노조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조 내 7개 계파에 속한 대의원(211명)보다 무소속 대의원(222명)이 더 많은 점도 현장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불과 1~2년 전만해도 대의원들의 상당수가 10개가 넘는 계파에 소속돼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데 앞장섰던 모습과는 완전 딴판이다.


◆투쟁의 덫 벗을 수 있나

현대차노조원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든 결정적 계기는 올해 초 벌인 어거지성 성과급 투쟁이다.

노조원들이 성과급 투쟁 뒤 곧바로 설(구정)을 맞아 고향을 찾았을 때 만나는 친지들마다 "노조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 "왜 현대차노조는 파업만 벌이냐"는 등 온갖 질책을 들어야 했다.

울산 현대차 노조원 C씨는 "만나는 친척들마다 노조를 비난하는 얘기를 늘어놓는 바람에 창피해서 머리를 들 수 없었다"고 당시의 괴로웠던 심정을 털어놓았다.

여기에다 습관성 파업에 식상해 하는 국민들의 현대차 불매운동까지 겹치면서 노조개혁 없인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된 것이다.

그러면 현대차노조가 과연 현장에서 새로운 운동행태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노동전문가들은 어떤 형태로든 달라질 것이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신노련의 김창곤 의장(의장3부)은 "노조원들은 확실히 변했다.

옛날과 같은 장기 악성파업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노조간부 중 상당수가 정치집단화 돼 있어 하루 아침에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동부 관계자도 "정치파업에 대한 현대차 노조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며 "하지만 여러 계파가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노동운동이 정상을 찾기위해선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울산=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