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512메가 D램 반도체 제품의 현물 가격은 전날에 비해 3% 상승했다.

이어 일주일여 뒤인 이달 1일에는 전날 대비 5% 상승하는 탄력을 보였다.

반도체 시황이 본격 상승세를 탈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작용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주말 결정된 고정거래 가격은 현물 가격을 비웃듯 오히려 3~5% 하락했다.

역부족을 느낀 현물 가격도 소폭이지만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업계는 세계 1위의 D램 업체인 삼성전자가 지난달부터 출하 물량을 의도적으로 줄여왔는데도 이 같은 양상이 나타나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달부터 부분적으로 주문이 들어오고 있는 신학기 수요 물량도 가격 하락을 저지하기에는 힘이 달렸다.

문제는 가격 저점을 점치는 기준 시점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초까지만 해도 '3,4월 바닥설'을 제기해 왔던 업계는 4월 들어서도 반도체 가격이 계속 떨어지자 '5월 바닥설'을 내놓더니 최근에는 '6월 바닥설'로 전망을 계속 수정하고 있다.

그나마 D램 업체들이 현물 시장에서 덤핑 판매를 자제하면서 가격하락 속도를 최대한 늦춘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


◆발목 잡힌 삼성전자 실적

하반기 들어 반도체 경기가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상승폭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주요 업체들이 상당량의 D램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 가격 반등시 한꺼번에 쏟아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반도체 시장의 공급 과잉을 눈여겨보고 있는 수요 업체들이 좀처럼 가격인상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는 점도 걸림돌이다.

이에 따라 반도체업계는 경우에 따라 계절적 성수기인 3분기를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올해를 결산할지 모른다는 우려에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실제 요즘 삼성전자의 연간 실적 전망은 그다지 일목요연하지 않다.

향후 반도체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실적 예측치도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경기 호전을 낙관하는 쪽은 올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6조~7조원,비관하는 이들은 4조~5조원 선으로 각각 예상하고 있다.


◆순이익은 7조원 선 가능할 듯

삼성전자가 지난해 수준(6조93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려면 하반기에 분기별로 2조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내야 한다.

올 상반기 이익이 2조원을 겨우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반기에 반도체 가격의 반등 탄력이 예년에 비해 형편없이 약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은 만큼 분기별 2조원의 이익을 올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만약 가능하다면 낸드플래시 사업이 지난해 수준의 이익을 내면서 휴대폰이나 LCD 분야의 눈부신 실적 호전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낸드플래시 메모리 가격은 1분기에 40%가량 가격이 떨어지면서 원가 수준을 위협했지만 최근에는 반등에 성공했다.

이익률은 20% 수준으로 예년의 30~40%에 못 미치지만 견조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 휴대폰의 경우 모토로라가 부진한 틈을 타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있고 디지털TV는 이익률이 다소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세계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LCD 패널도 2분기에 가격이 반등세로 돌아서면서 이익률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에서 예측할 수 있는 하반기의 분기별 이익은 1조5000억원 선이 적절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다만 삼성전자의 연간 순이익은 7조원 안팎에 달할 가능성이 높다.

본사의 영업이익 항목에 잡히지 않는 TV 부문 해외 사업이 순항을 거듭하고 있고 휴대폰도 해외 생산·판매 비중이 50%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순이익도 글로벌 시장에서의 수익 창출에 따른 지분법 평가이익이 반영되면서 영업이익보다 1조원 더 많았다.


◆내년에도 반도체는 고민거리

삼성전자의 최대 고민거리는 반도체 시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2004년과 2005년의 낸드플래시 호황,2006년의 D램 호황 등을 통해 3년 동안 무려 18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앞으로는 이 같은 폭발적인 수익 창출이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D램이든 낸드플래시든 최근 1~2년 사이 업계의 공급 능력이 엄청나게 증강되면서 가격 하락폭이 가팔라졌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하이닉스를 비롯해 일부 업체들이 생산성이 떨어지는 200mm 웨이퍼 공정을 줄이면서 지금보다는 공급이 줄어들겠지만 과거처럼 좋은 이익률을 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신규시장 창출이 더디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목됐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올 들어 16기가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주력 제품으로 내놓았는데 정작 시장의 수요는 8기가 제품이 주류를 이뤘다.

고용량을 향한 제품개발 경쟁이 세트 업체와 보조를 맞추지 못한 데 따른 '미스 매칭'이 발생한 것이다.

이 부담은 리스크를 무릅쓰고 기술 개발을 선도한 업체에 전가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손실이다.

조일훈/이태명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