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兆 연금운용' 결정 기금운영委회의록 살펴보니…] 절반이 非전문가 … 복지부 장관 '원맨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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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기금 운영위원회의 회의록(공개) 내용을 들여다 보면 답답함이 절로 느껴진다.
200조원이 넘는 기금을,앞으로 최대 1715조원(개혁시 최대 4218조원)까지 불어날 연금을 과연 이런 식으로 운용해도 되나 싶을 정도다.
◆복지부 장관의 원맨쇼?
한국경제신문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기금운용위의 5차례 회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기금운용위는 회의 절차와 내용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회의 내용을 보면 위원장인 유시민 전 장관이 회의시간 내내 마이크를 독차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유 전 장관의 회당 발언 횟수는 21~44회.2시간이 안 되는 회의시간 중 식사시간과 안건보고 시간을 빼면 나머지 시간의 절반 정도를 위원장이 차지한 셈이다.
사회를 보는 입장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많다는 게 위원들의 얘기다.
유 장관 다음으로 발언을 많이 한 위원은 참여연대와 한국노총 전경련 한국개발연구원(KDI) 쪽에서 참석한 위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발언도 회당 평균 4~5회에 그쳤다.
◆회의 내용도 한심
회의 내용이 알찼다면 문제될 리 없다.
그러나 발언내용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복지부는 기금 운용의 전략적 방침을 정하는 자리인 만큼 연금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위원으로 위촉하여 기금 운용의 전문성을 확보했다고 자랑해왔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다음은 지난해 5월29일 회의 때 기금운용 성과 평가안 심의 내용 중 일부다.
"질문이 있는데요.
경상 성장률 3.5%는 어떻게 나옵니까.
실질 성장률이 4%대이고 물가가 2.6%였으면 최소한 6.6%는 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희도 확인을 해보려고 했습니다만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가 작년에 마이너스였다고 합니다." "저도 3.5% 수치는 처음 듣는데요."
기금 평가를 하겠다고 온 위원들이나 연금관리공단 인사들까지 이미 3월 말 공개된 경제성장률 수치를 놓고 회의석상에서 헤매고 있었다.
참고로 2005년 실질성장률은 4.2%,GDP 디플레이터는 -0.2%였다.
◆조직 이해 관계로 다툼도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조직 이해관계를 놓고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
2006년 3차 회의(10월25일) 때의 대화 내용이다.
"조금 전에 기획단(연금기금 장기운용전략 기획단) 구성 문제를 얘기하셨는데 저희 연구원에서는 기획단원이 구성되는 내용도 전혀 몰랐고요,저희 연구원에도 연금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팀들이 있는데….저는 (기획단에서 보건사회연구원이 빠진 것이) 좀 뭔가 의도적인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보사연 원장)
"기획단은 기금이 커짐에 따라 우리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부정적인 효과를 계량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계량적인 분석이 가능한 분들 위주로 이 기획단을 구성했기 때문에 보사연에서 참여하시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요…."(복지부 관계자)
"전혀 연금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모양인데…."(보사연 원장)
◆"이런 회의 왜 하나"
시간 부족에다 이런저런 이유로 대화가 겉돌다 보니 웬만한 결정은 서면으로 대체되기 일쑤다.
유 전 장관은 지난해 2차 회의 때 연금 해외 투자 방향에 대해서는 "바쁘니까 서면으로 저희가 보내 드리고…"라며 안건을 처리했다.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일정이 장관에 맞춰 짜여지고 회의시간도 짧고 민간위원들이 투자·운용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정책적으로 논의하고 협의하는 것은 어렵다"며 "시민단체들은 그냥 회의에 참가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장영 한국공인회계사회 상근부회장도 "수협이다 음식업협회다 소비자단체다 해서 민간위원들이 참석하지만 전문성이 떨어져 이런 회의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박민수 복지부 연금재정팀장은 "기금운용위의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하부조직인 기금실무평가위원에서 보좌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균 서울대 교수는 "기금운용위는 운용위대로 큰 방향을 결정하는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며 "기금위가 현재와 같은 체계라면 정부의 들러리밖에 더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수익률 공무원연금에도 뒤져
이 같은 기금운용위의 비(非)전문성은 기금 운용의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민연금 운용수익률은 5.77%로 공무원연금(7.4%)에 크게 뒤졌다.
외국의 비슷한 연금들과 비교하면 2004~2006년 국민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6.36%로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13.4% △캐나다 연금투자이사회(CPPIB) 19.62%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 9.8%에 크게 뒤처졌다.
한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외환위기 후 다양한 투자 기회가 많았지만 전체 운용기금의 86.7%(지난해 말 기준)에 육박하는 채권 투자 비중을 바꿔보려는 의지도 노력도 없었다"며 "앞으로 전문성을 키워 투자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
< 용어풀이 >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2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 기금 운용 내용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1987년 8월 설치됐다.
복지부와 연금관리공단에서 제출한 기금 결산안뿐 아니라 운용지침 운용계획 중기자산배분안 등을 모두 여기서 확정한다.
위원은 총 21명으로 △위원장 1명(복지부 장관)과 당연직 정부위원 6명 △가입자대표 12명(사용자 대표 3명,근로자 대표 3명,지역 가입자 대표 6명) △관계 전문가 2명으로 이뤄져 있다.
위원 임기는 2년이며 중임이 가능하다.
회의 때마다 교통비로 10만원 정도를 받는다.
하부 조직으로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를 두고 있다.
여기서는 21명의 각계 전문가가 기금운용위에 올라가는 사항을 심의·평가한다.
200조원이 넘는 기금을,앞으로 최대 1715조원(개혁시 최대 4218조원)까지 불어날 연금을 과연 이런 식으로 운용해도 되나 싶을 정도다.
◆복지부 장관의 원맨쇼?
한국경제신문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기금운용위의 5차례 회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기금운용위는 회의 절차와 내용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회의 내용을 보면 위원장인 유시민 전 장관이 회의시간 내내 마이크를 독차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유 전 장관의 회당 발언 횟수는 21~44회.2시간이 안 되는 회의시간 중 식사시간과 안건보고 시간을 빼면 나머지 시간의 절반 정도를 위원장이 차지한 셈이다.
사회를 보는 입장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많다는 게 위원들의 얘기다.
유 장관 다음으로 발언을 많이 한 위원은 참여연대와 한국노총 전경련 한국개발연구원(KDI) 쪽에서 참석한 위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발언도 회당 평균 4~5회에 그쳤다.
◆회의 내용도 한심
회의 내용이 알찼다면 문제될 리 없다.
그러나 발언내용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복지부는 기금 운용의 전략적 방침을 정하는 자리인 만큼 연금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위원으로 위촉하여 기금 운용의 전문성을 확보했다고 자랑해왔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다음은 지난해 5월29일 회의 때 기금운용 성과 평가안 심의 내용 중 일부다.
"질문이 있는데요.
경상 성장률 3.5%는 어떻게 나옵니까.
실질 성장률이 4%대이고 물가가 2.6%였으면 최소한 6.6%는 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희도 확인을 해보려고 했습니다만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가 작년에 마이너스였다고 합니다." "저도 3.5% 수치는 처음 듣는데요."
기금 평가를 하겠다고 온 위원들이나 연금관리공단 인사들까지 이미 3월 말 공개된 경제성장률 수치를 놓고 회의석상에서 헤매고 있었다.
참고로 2005년 실질성장률은 4.2%,GDP 디플레이터는 -0.2%였다.
◆조직 이해 관계로 다툼도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조직 이해관계를 놓고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
2006년 3차 회의(10월25일) 때의 대화 내용이다.
"조금 전에 기획단(연금기금 장기운용전략 기획단) 구성 문제를 얘기하셨는데 저희 연구원에서는 기획단원이 구성되는 내용도 전혀 몰랐고요,저희 연구원에도 연금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팀들이 있는데….저는 (기획단에서 보건사회연구원이 빠진 것이) 좀 뭔가 의도적인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보사연 원장)
"기획단은 기금이 커짐에 따라 우리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부정적인 효과를 계량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계량적인 분석이 가능한 분들 위주로 이 기획단을 구성했기 때문에 보사연에서 참여하시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요…."(복지부 관계자)
"전혀 연금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모양인데…."(보사연 원장)
◆"이런 회의 왜 하나"
시간 부족에다 이런저런 이유로 대화가 겉돌다 보니 웬만한 결정은 서면으로 대체되기 일쑤다.
유 전 장관은 지난해 2차 회의 때 연금 해외 투자 방향에 대해서는 "바쁘니까 서면으로 저희가 보내 드리고…"라며 안건을 처리했다.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일정이 장관에 맞춰 짜여지고 회의시간도 짧고 민간위원들이 투자·운용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정책적으로 논의하고 협의하는 것은 어렵다"며 "시민단체들은 그냥 회의에 참가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장영 한국공인회계사회 상근부회장도 "수협이다 음식업협회다 소비자단체다 해서 민간위원들이 참석하지만 전문성이 떨어져 이런 회의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박민수 복지부 연금재정팀장은 "기금운용위의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하부조직인 기금실무평가위원에서 보좌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균 서울대 교수는 "기금운용위는 운용위대로 큰 방향을 결정하는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며 "기금위가 현재와 같은 체계라면 정부의 들러리밖에 더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수익률 공무원연금에도 뒤져
이 같은 기금운용위의 비(非)전문성은 기금 운용의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민연금 운용수익률은 5.77%로 공무원연금(7.4%)에 크게 뒤졌다.
외국의 비슷한 연금들과 비교하면 2004~2006년 국민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6.36%로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13.4% △캐나다 연금투자이사회(CPPIB) 19.62%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 9.8%에 크게 뒤처졌다.
한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외환위기 후 다양한 투자 기회가 많았지만 전체 운용기금의 86.7%(지난해 말 기준)에 육박하는 채권 투자 비중을 바꿔보려는 의지도 노력도 없었다"며 "앞으로 전문성을 키워 투자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
< 용어풀이 >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2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 기금 운용 내용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1987년 8월 설치됐다.
복지부와 연금관리공단에서 제출한 기금 결산안뿐 아니라 운용지침 운용계획 중기자산배분안 등을 모두 여기서 확정한다.
위원은 총 21명으로 △위원장 1명(복지부 장관)과 당연직 정부위원 6명 △가입자대표 12명(사용자 대표 3명,근로자 대표 3명,지역 가입자 대표 6명) △관계 전문가 2명으로 이뤄져 있다.
위원 임기는 2년이며 중임이 가능하다.
회의 때마다 교통비로 10만원 정도를 받는다.
하부 조직으로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를 두고 있다.
여기서는 21명의 각계 전문가가 기금운용위에 올라가는 사항을 심의·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