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찬] 문장의 검객, 소설가 김훈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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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한 삼청동 길을 지나 만찬 장소에 들어섰더니 범상치 않은 서예작품들이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올 2월에 타계하신 한국 3대 서예가로 손꼽혔던 여초(如初) 김응현 선생이 기거했던 곳이다. 그런 장소에 앉아 있자니, 곧고 바른 붓글씨들이 남한산성처럼 견고히 둘러싼 것처럼 보였다.
한경닷컴이 주최하고 한국CEO연구소(대표 강경태)가 주관하는 제7회 저자와의 만찬이 시작됐다. 이번 만찬의 주인공은 <남한산성>을 집필한 소설가 김훈. 작가의 날 선 눈빛에 회원들 사이에는 긴장감마저 느껴졌는데 의외로 수수하게 웃으며 농을 건네는 것으로 화기애애한 자리로 탈바꿈했다.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펜을 꺼내 뭔가를 적기에 들여다봤더니 여초선생의 붓글씨를 옮겨 쓰고 있었다. 위이불맹(威而不猛). 학고재 손철주 주간이 말한다. “위이불맹이라. 위엄이 있되 사납지는 않다. 김훈 선생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네. 카리스마는 있지만 무섭지는 않으니까.”
대화를 나눌수록 카리스마는 더해가지만 웃음은 순하게 짓는 그 모습을 보면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간 우물거리는 발음은 느긋해 보였고 입안에서 둥글게 머금고 있다가 뱉는 듯한 말의 리듬감이 인상 깊었다.
Q1. <남한산성>을 집필하게 된 동기가 있다면?
먼저 책에 대해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 책을 쓴다는 것, 그리고 판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 작가는 오직 책을 팔아서만 살수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책을 쓰는 이유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기 위해서란 점이다. 많은 독자들이 읽어준다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독자에게 책을 읽힌다는 것은 저자 한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수많은 국민을 그 국가 사회가 길러냈기 때문에 그 토양위에서 비로서 책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책을 읽을 수 있고 또 살 수 있는 구매력을 가질 수 있게 길러준 사회에 감사한다.
이번에 쓴 책은 고통스러운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를 한없이 고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희망이나 비전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고 들어가 독자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싶었다. 그 고문의 결과, 스스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현실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전략을 가진 것이다. 그런 고통스러운 정신적 압박 속으로 독자들이 기꺼이 따라와 주시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밥을 벌어먹는 노동….”
“남한산성의 고통을 통해 독자들을 한없이 고문하고 싶었다.”
3년 전 남한산성에 자전거를 타고 갔을 때 성의 구석구석을 돌았다. 그리고 내려와서 삼전도 앞을 지나는데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암흑 같은 것을 느꼈다. 내 마음이 억압되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고통에 빠졌다. 난 그 정체가 뭔지 몰랐다. 왜 그런지도 명확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 후에도 자꾸 남한산성에 갔는데 갈 때마다 내 마음이 억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결국 언젠가 내가 이것으로 소설을 쓰게 되겠구나 하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소설속의 배경이 겨울이다. 눈이 가득 쌓였을 때 남한산성을 혼자 헤매고 다녔는데 슬프고 비통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소설을 쓰겠단 막연한 느낌이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추운 산성 속에서 아무런 희망을 설정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냈을까, 그리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앞날을 열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생각하면서 한잔한자 써 내려갔다.
Q2. '문장의 검객' '단문의 예술' 등 문장에 대한 예찬이 많다. 이러한 문장력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인가?
문장은 경험에서 나올 수가 없다. 경험에서 소설의 소재나 어떤 세부적인 것은 얻어낼 수 있지만 문장이라는 것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다 녹여서 표현을 지향하는 것이다. 문장은 표현이다. 표현이란 것은 전쟁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는, 끝까지 가야만 완성이 되는 것이다. 나는 끝까지 갔느냐, 가지 못했다.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표현에 관한한 도저히 물러설 수 없다. 이것은 전쟁이다. 폭격기를 든 공군이 아닌 육군 보병이 한걸음씩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개별적인 단어 하나하나와 싸워나가는 보병전투이며 백병전이다. 이것이 내가 문장을 쓰는 태도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글 문장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한글로 문장을 잘 쓰려면 영어와 한문을 잘해야 한다. 수학이나 물리를 잘하려면 더욱 좋다. 한문이나 영어문장이 가지고 있는 논리적인 명석성과 문장의 과학성 그런 것들을 우리 모국어로 어떻게 감당해 내야 하는 것인가를 끝없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노력이 아닌 모색이고 전쟁이다.
“문장을 쓰는 것은 한 발짝도 물러날 수 없는 전투이자 전쟁”
“글을 잘 쓰려면 영어, 한문, 수학, 물리 등의 과학적 사고 익혀야”
Q3. 독자들은 <남한산성>을 역사소설로 인식한다. 역사를 소재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또한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역사소설이 아니라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 그리고 당대현실에 대한 질문, 그런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배경으로 했지만 역사 그 자체는 아니다. 난 역사를 생각할 때 항상 그 역사를 이루었던 많은 개개인들의 삶의 구체성을 생각한다. 하지만 기록된 역사에는 그 구체성이 나와 있지 않다. 반면 남한산성에는 수많은 구체성이 있다. 냉이, 간장, 된장 이런 것들이 그 구체성에 해당한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자질구레하고 무가치하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남한산성에서 그들이 먹었던 냉이, 그것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의 하나라 생각한다.
역사를 전공하는 사학자가 아닌 소설을 쓰는 문학가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역사를 전공하는 분과 나 사이에는 의견의 대립이 있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의 관계에서 그런 갈등이 벌어지는데 난 그런 갈등과 대립이 있는 것은 매우 건강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앞으로도 삶의 구체성, 일생의 절박성의 편을 드는 작가로써 남게 될 것이다.
Q4. 책의 첫 문장에 '이 책은 소설이고 소설로만 읽혀야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남한산성과 한미 FTA를 연관 지어 보는 측면이 있는데?
작가로써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독자들의 자유로운 연상과 자유로운 책읽기를 전부 개입 할 순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FTA가 농민계층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킨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농민계층을 희생시키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현실을 감당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을 감당하고 미래를 열고나가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럼 농민은 어떻게 하나? 물론 그것을 떠안고 가면서 해결하며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미래를 지향하는 지도자들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FTA와 관련이 없다. (웃음)
Q5. 책의 결말에서 봄이 온다는 것은 희망의 상징인가?
희망이 겉으로 노출되어 있지는 않다. 이것을 희망이라고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아주 고통스러운 희망이 되겠다. 산성에 봄이 온다는 것은 아주 허약한 희망이다. 봄은 누가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희망을 그려 넣는다는 것을 난 허위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러한 결말을 넣었다. 그 결말은 봄이 오는 것 같은 자연현상의 일부이다.
Q6. <남한산성>처럼 고통을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는?
고통이라기보다 인간의 야망성에 관심이 있다. 악과 폭력의 문제를 생각하다 보니 고통과 전쟁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악과 폭력이 엄존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색하려는 것이다. 악과 폭력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선의지나 자유에 대한 열망이 있지만 그 반대의 측면도 있는 것이다. 그것과 더불어, 그 위에서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과 고통을 묘사해 나가는 것이다.
Q7. 임금인 인조를 기업의 CEO라고 했을 때, 경영자로써 문제점은?
인조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정보의 부재이다. 12만군대가 요동벌판을 건너오는 것은 눈으로 봐도 알 수 있을 텐데도 아무도 그 사실을 통보해 주지 않았다. 기막힐 정도로 한심한 정보의 부재였고 알았을 때는 적들이 이미 개성까지 들어와 짓밟고 있었다. 뒤늦은 정보로 결국 남대문에서 방향을 돌리는데 거기서 조선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왕이 우왕좌왕 하는 것을 국민들이나 군사들은 신임하지 못한다.
40년 전 임진왜란을 통해 이순신 장군은 매우 우수한 화포와 화약을 개발했었다. 그러나 그 화포와 화약이 40년 후 병자호란 때는 전혀 작동이 되지 않았다. 문인정권들이 이것을 관리하지 않은 것이다. 남한산성 안에는 대포 없이 조총과 활만 있었다. 그에 비해 청나라는 장거리포를 끌고 왔었다. 거기에는 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국가경영에 방만함이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건 인조임금의 과오라기보다 문인정권 전체의 과오다. 명의 대한 사대를 하고 있으면 국방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어리석은 착각에 빠져있었다. 명만 받들면 된다는 생각에서이다. 하지만 명이 무너지고 청이 지배함에 거기에서 거대한 혼란이 온 것이다. 문제는 정보의 부재와 내부관리의 무능정도가 될 수 있겠다.
Q8. 성안은 말의 세계이고 성 밖은 무기의 세계라 했다. 받아들일 수 없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속에서 ‘서날쇠’라는 백성이 제일 굳건하게 지켜내고 있었다. 가장 서민적이고 가장 일상적인 것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각이 거기서 나타난 것은 아닌가.
그런 점이 아마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서날쇠에게 애국심이란 것은 없다. 그렇지만 성에 들어와서 다시 터전을 잡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나는 그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김상훈 같은 애국심은 없다. 애국심이 없다기보다는 조정에 대한 충성심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의 일상이 소중한 사람이다. 백성들의 이데올로기라기보다 삶의 구체성의 편에 서있는데 그들이 결국 나라를 책임지는 것이다.
Q9. <남한산성>을 읽기 힘들다는 독자 의견도 많은데...?
내 소설은 매우 읽기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글이다. 하지만 작가의 고통스러운 생각이 담긴 글들은 독자가 따라오지 않으리란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그건 독자를 함부로 보고 무시하는 것이다. 작가의 진지한 태도가 항상 독자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 그동안 우리나라 문학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던 일본소설을 제치고 한국독자를 회복한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개들도 지 마당은 지가 지킨다고 했다. 한글을 가지고 한국시장에서 일본작가한테 밀려난다는 것은 참 분한일이다. 한국에서 잘 팔리는 일본소설이 뛰어난 문학적 가치가 있다면 괜찮지만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Q10. 김훈선생님을 만나 뵈러 간다는 말에 20대 자녀들이 이 질문을 꼭 해달라고 부탁했다. 20대로 이 땅을 살아가야할 자신에게 인생을 많이 살아오신 선생님께서 해줄 말씀은 없으신지.
20대는 무질서 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이다. 나의 20대도 그랬을 것이다. 난 오직 가난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으며 살고 있다. 난 이런 것을 상상을 못했었다.
20대는 난관을 돌파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질서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상황도 있지만 그와 반대의 상황이 더욱 많다. 무질서하고 비틀리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계속 닥친다. 그것을 돌파하는 힘이 지금 젊은이들은 너무나 약하고 훈련이 안되어 있다.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다. 지금 말해도 잘 모를 테고 살아봐야 안다.
Q11. 음풍농월[吟風弄月]이 전공이라 들었는데?
음풍은 좀 쉬운데 농월은 어렵다. 음풍은 언어로 정서를 표현하는 것인데 농월이란 것은 달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사물을 가지고 노는 것은 어렵다. 난 아직 음풍단계이며 아직은 하수다. (※음풍농월[吟風弄月] :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흥취를 자아내어 즐겁게 놂)
Q12. <남한산성>에서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다. 치욕은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다." 라고 했다.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서는 이 대목에서 동기부여를 얻기도 했다.
비즈니스도 전쟁이다. 룰이 있으므로 할만하다. 남한산성은 룰이 없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야 한다. 죽으면 안 되는 것이다.
글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HiCEO팀 작가 이주영
사진 : 한경닷컴 김주연
[동영상] 한국경제신문이 만드는 프리미엄 교육사이트 HiCEO
한경닷컴이 주최하고 한국CEO연구소(대표 강경태)가 주관하는 제7회 저자와의 만찬이 시작됐다. 이번 만찬의 주인공은 <남한산성>을 집필한 소설가 김훈. 작가의 날 선 눈빛에 회원들 사이에는 긴장감마저 느껴졌는데 의외로 수수하게 웃으며 농을 건네는 것으로 화기애애한 자리로 탈바꿈했다.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펜을 꺼내 뭔가를 적기에 들여다봤더니 여초선생의 붓글씨를 옮겨 쓰고 있었다. 위이불맹(威而不猛). 학고재 손철주 주간이 말한다. “위이불맹이라. 위엄이 있되 사납지는 않다. 김훈 선생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네. 카리스마는 있지만 무섭지는 않으니까.”
대화를 나눌수록 카리스마는 더해가지만 웃음은 순하게 짓는 그 모습을 보면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간 우물거리는 발음은 느긋해 보였고 입안에서 둥글게 머금고 있다가 뱉는 듯한 말의 리듬감이 인상 깊었다.
Q1. <남한산성>을 집필하게 된 동기가 있다면?
먼저 책에 대해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 책을 쓴다는 것, 그리고 판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 작가는 오직 책을 팔아서만 살수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책을 쓰는 이유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기 위해서란 점이다. 많은 독자들이 읽어준다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독자에게 책을 읽힌다는 것은 저자 한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수많은 국민을 그 국가 사회가 길러냈기 때문에 그 토양위에서 비로서 책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책을 읽을 수 있고 또 살 수 있는 구매력을 가질 수 있게 길러준 사회에 감사한다.
이번에 쓴 책은 고통스러운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를 한없이 고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희망이나 비전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고 들어가 독자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싶었다. 그 고문의 결과, 스스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현실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전략을 가진 것이다. 그런 고통스러운 정신적 압박 속으로 독자들이 기꺼이 따라와 주시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밥을 벌어먹는 노동….”
“남한산성의 고통을 통해 독자들을 한없이 고문하고 싶었다.”
3년 전 남한산성에 자전거를 타고 갔을 때 성의 구석구석을 돌았다. 그리고 내려와서 삼전도 앞을 지나는데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암흑 같은 것을 느꼈다. 내 마음이 억압되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고통에 빠졌다. 난 그 정체가 뭔지 몰랐다. 왜 그런지도 명확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 후에도 자꾸 남한산성에 갔는데 갈 때마다 내 마음이 억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결국 언젠가 내가 이것으로 소설을 쓰게 되겠구나 하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소설속의 배경이 겨울이다. 눈이 가득 쌓였을 때 남한산성을 혼자 헤매고 다녔는데 슬프고 비통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소설을 쓰겠단 막연한 느낌이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추운 산성 속에서 아무런 희망을 설정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냈을까, 그리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앞날을 열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생각하면서 한잔한자 써 내려갔다.
Q2. '문장의 검객' '단문의 예술' 등 문장에 대한 예찬이 많다. 이러한 문장력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인가?
문장은 경험에서 나올 수가 없다. 경험에서 소설의 소재나 어떤 세부적인 것은 얻어낼 수 있지만 문장이라는 것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다 녹여서 표현을 지향하는 것이다. 문장은 표현이다. 표현이란 것은 전쟁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는, 끝까지 가야만 완성이 되는 것이다. 나는 끝까지 갔느냐, 가지 못했다.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표현에 관한한 도저히 물러설 수 없다. 이것은 전쟁이다. 폭격기를 든 공군이 아닌 육군 보병이 한걸음씩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개별적인 단어 하나하나와 싸워나가는 보병전투이며 백병전이다. 이것이 내가 문장을 쓰는 태도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글 문장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한글로 문장을 잘 쓰려면 영어와 한문을 잘해야 한다. 수학이나 물리를 잘하려면 더욱 좋다. 한문이나 영어문장이 가지고 있는 논리적인 명석성과 문장의 과학성 그런 것들을 우리 모국어로 어떻게 감당해 내야 하는 것인가를 끝없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노력이 아닌 모색이고 전쟁이다.
“문장을 쓰는 것은 한 발짝도 물러날 수 없는 전투이자 전쟁”
“글을 잘 쓰려면 영어, 한문, 수학, 물리 등의 과학적 사고 익혀야”
Q3. 독자들은 <남한산성>을 역사소설로 인식한다. 역사를 소재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또한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역사소설이 아니라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 그리고 당대현실에 대한 질문, 그런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배경으로 했지만 역사 그 자체는 아니다. 난 역사를 생각할 때 항상 그 역사를 이루었던 많은 개개인들의 삶의 구체성을 생각한다. 하지만 기록된 역사에는 그 구체성이 나와 있지 않다. 반면 남한산성에는 수많은 구체성이 있다. 냉이, 간장, 된장 이런 것들이 그 구체성에 해당한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자질구레하고 무가치하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남한산성에서 그들이 먹었던 냉이, 그것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의 하나라 생각한다.
역사를 전공하는 사학자가 아닌 소설을 쓰는 문학가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역사를 전공하는 분과 나 사이에는 의견의 대립이 있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의 관계에서 그런 갈등이 벌어지는데 난 그런 갈등과 대립이 있는 것은 매우 건강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앞으로도 삶의 구체성, 일생의 절박성의 편을 드는 작가로써 남게 될 것이다.
Q4. 책의 첫 문장에 '이 책은 소설이고 소설로만 읽혀야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남한산성과 한미 FTA를 연관 지어 보는 측면이 있는데?
작가로써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독자들의 자유로운 연상과 자유로운 책읽기를 전부 개입 할 순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FTA가 농민계층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킨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농민계층을 희생시키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현실을 감당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을 감당하고 미래를 열고나가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럼 농민은 어떻게 하나? 물론 그것을 떠안고 가면서 해결하며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미래를 지향하는 지도자들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FTA와 관련이 없다. (웃음)
Q5. 책의 결말에서 봄이 온다는 것은 희망의 상징인가?
희망이 겉으로 노출되어 있지는 않다. 이것을 희망이라고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아주 고통스러운 희망이 되겠다. 산성에 봄이 온다는 것은 아주 허약한 희망이다. 봄은 누가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희망을 그려 넣는다는 것을 난 허위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러한 결말을 넣었다. 그 결말은 봄이 오는 것 같은 자연현상의 일부이다.
Q6. <남한산성>처럼 고통을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는?
고통이라기보다 인간의 야망성에 관심이 있다. 악과 폭력의 문제를 생각하다 보니 고통과 전쟁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악과 폭력이 엄존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색하려는 것이다. 악과 폭력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선의지나 자유에 대한 열망이 있지만 그 반대의 측면도 있는 것이다. 그것과 더불어, 그 위에서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과 고통을 묘사해 나가는 것이다.
Q7. 임금인 인조를 기업의 CEO라고 했을 때, 경영자로써 문제점은?
인조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정보의 부재이다. 12만군대가 요동벌판을 건너오는 것은 눈으로 봐도 알 수 있을 텐데도 아무도 그 사실을 통보해 주지 않았다. 기막힐 정도로 한심한 정보의 부재였고 알았을 때는 적들이 이미 개성까지 들어와 짓밟고 있었다. 뒤늦은 정보로 결국 남대문에서 방향을 돌리는데 거기서 조선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왕이 우왕좌왕 하는 것을 국민들이나 군사들은 신임하지 못한다.
40년 전 임진왜란을 통해 이순신 장군은 매우 우수한 화포와 화약을 개발했었다. 그러나 그 화포와 화약이 40년 후 병자호란 때는 전혀 작동이 되지 않았다. 문인정권들이 이것을 관리하지 않은 것이다. 남한산성 안에는 대포 없이 조총과 활만 있었다. 그에 비해 청나라는 장거리포를 끌고 왔었다. 거기에는 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국가경영에 방만함이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건 인조임금의 과오라기보다 문인정권 전체의 과오다. 명의 대한 사대를 하고 있으면 국방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어리석은 착각에 빠져있었다. 명만 받들면 된다는 생각에서이다. 하지만 명이 무너지고 청이 지배함에 거기에서 거대한 혼란이 온 것이다. 문제는 정보의 부재와 내부관리의 무능정도가 될 수 있겠다.
Q8. 성안은 말의 세계이고 성 밖은 무기의 세계라 했다. 받아들일 수 없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속에서 ‘서날쇠’라는 백성이 제일 굳건하게 지켜내고 있었다. 가장 서민적이고 가장 일상적인 것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각이 거기서 나타난 것은 아닌가.
그런 점이 아마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서날쇠에게 애국심이란 것은 없다. 그렇지만 성에 들어와서 다시 터전을 잡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나는 그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김상훈 같은 애국심은 없다. 애국심이 없다기보다는 조정에 대한 충성심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의 일상이 소중한 사람이다. 백성들의 이데올로기라기보다 삶의 구체성의 편에 서있는데 그들이 결국 나라를 책임지는 것이다.
Q9. <남한산성>을 읽기 힘들다는 독자 의견도 많은데...?
내 소설은 매우 읽기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글이다. 하지만 작가의 고통스러운 생각이 담긴 글들은 독자가 따라오지 않으리란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그건 독자를 함부로 보고 무시하는 것이다. 작가의 진지한 태도가 항상 독자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 그동안 우리나라 문학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던 일본소설을 제치고 한국독자를 회복한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개들도 지 마당은 지가 지킨다고 했다. 한글을 가지고 한국시장에서 일본작가한테 밀려난다는 것은 참 분한일이다. 한국에서 잘 팔리는 일본소설이 뛰어난 문학적 가치가 있다면 괜찮지만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Q10. 김훈선생님을 만나 뵈러 간다는 말에 20대 자녀들이 이 질문을 꼭 해달라고 부탁했다. 20대로 이 땅을 살아가야할 자신에게 인생을 많이 살아오신 선생님께서 해줄 말씀은 없으신지.
20대는 무질서 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이다. 나의 20대도 그랬을 것이다. 난 오직 가난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으며 살고 있다. 난 이런 것을 상상을 못했었다.
20대는 난관을 돌파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질서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상황도 있지만 그와 반대의 상황이 더욱 많다. 무질서하고 비틀리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계속 닥친다. 그것을 돌파하는 힘이 지금 젊은이들은 너무나 약하고 훈련이 안되어 있다.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다. 지금 말해도 잘 모를 테고 살아봐야 안다.
Q11. 음풍농월[吟風弄月]이 전공이라 들었는데?
음풍은 좀 쉬운데 농월은 어렵다. 음풍은 언어로 정서를 표현하는 것인데 농월이란 것은 달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사물을 가지고 노는 것은 어렵다. 난 아직 음풍단계이며 아직은 하수다. (※음풍농월[吟風弄月] :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흥취를 자아내어 즐겁게 놂)
Q12. <남한산성>에서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다. 치욕은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다." 라고 했다.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서는 이 대목에서 동기부여를 얻기도 했다.
비즈니스도 전쟁이다. 룰이 있으므로 할만하다. 남한산성은 룰이 없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야 한다. 죽으면 안 되는 것이다.
글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HiCEO팀 작가 이주영
사진 : 한경닷컴 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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