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에 걸친 엔고 파고는 '경제대국' 일본의 체질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플라자합의로 달러 가치가 급락하면서 찾아온 80년대의 1차엔고 때는 엔.달러 환율이 39개월간 52.0%나 하락했다.

1990년 4월부터 1995년 4월까지 이어진 2차 엔고 시절엔 60개월간 엔.달러 환율이 47.3%나 떨어졌다. 1990년 달러당 158엔에서 1995년 83엔으로 급락한 것.

엔고 현상은 일본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특히 2차 엔고의 쇼크가 컸다. 1990년 5.2%였던 경제성장률은 이듬해 3.4%로 크게 둔화됐으며 이후 1995년까지 1% 내외 성장에 그쳤다.

엔고가 수출기업의 발목을 잡은 탓이다. 화학.섬유업체인 도레이의 오가와 미치오 고문(68)은 "엔고 당시 수출이 줄어드는데 따라 채산성이 악화되고,이에 따라 설비투자 여력이 감소하는 등 악순환에 빠져들었다"고 회고했다. 지금은 화장품 브랜드로 유명한 가네보사가 엔고를 이겨내지 못하고 섬유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오가와 고문은 설명했다. 엔고가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게 된 것.

오가와 고문은 "도레이는 일본 내 봉제공장이 문을 닫게 될 정도로 가격경쟁력이 하락함에 따라 한국 중국 등지에서의 위탁생산 비중을 늘렸다"며 "디자인과 마케팅은 본사에서 하고,생산은 아시아지역에서 하는 글로벌 경영체제를 가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도레이는 현재 연간 1조원 정도의 매출 가운데 절반을 해외에서 일으키고 있다.

엔고 시절 60% 이상이던 섬유비중도 50% 밑으로 줄이고 화학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어찌보면 엔고가 도레이에 사업고도화와 글로벌화라는 선물을 준 셈이다.

도쿄 시내에서 60km 떨어진 중앙공업단지에 자리잡고 있는 자동차부품업체 야마모토제작소. 이 회사는 신기술 개발과 생산기지 해외 이전을 통해 엔고 파고를 넘었다.

야마모토 가츠히로 사장은 "80년대에는 버블,90년대엔 불황으로 제조업 환경이 최악이었다"며 "원가를 30% 끌어내리기 위해 신기술 금형제조기술인 '파인브랭크'를 개발하고,산학협동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고 엔고 시절을 회고했다.

2차 엔고가 끝날 즈음엔 도요타 자동차를 따라 미국 켄터키주에 현지공장을 세웠다. 혹독한 엔고 시절을 이겨낸 이 회사는 일본경제가 '턴 어라운드'하는 요즘 설비증설에 나서는 등 호황국면을 대비하고 있다.

클러치 생산능력은 월 400만개에서 월 500만개로 늘리고 6억5000만엔을 투자해 야마가타현에 공장을 신설할 계획이다. 올 들어 신규인력을 채용하고 잔업을 늘리고 있으나 넘쳐나는 일감을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야마모토 사장은 "리더는 여러 면을 보면서 의사결정에 나서야 한다"며 "한국경제가 지금 힘든시기에 들어섰지만 3년 후엔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가 갈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수익사업 구조조정,사업구조 고도화,글로벌화 등을 통해 엔고 파고를 이겨낸 일본의 경험에 비춰볼 때 그렇다는 설명이다.

도쿄=남궁 덕 기자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