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I증권 인수전에 참여하고 있는 모 회사는 지난달 30일 KGI증권 매각 주간사인 라자드로부터 '프로시저 레터(procedure letter)'를 한 통 받았다. 라자드 측이 2차 입찰대상자로 선정된 기업 몇 군데에 보내는 매각 절차 등이 담긴 공문이었다. 그러나 공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 딱 한줄만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매각자는)어느 시점에서든 절대적 재량하에 다른 매수인에게 공지없이 특별협정을 맺을 수 있고,어떤 협상도 종결시킬 수 있는 권리를 소유하지만 (매수인에게) 어떤 의무나 책임도 지지 않는다." 공문을 받은 회사 관계자는 "쉽게 말해 매도자는 자신들에게 불리하면 언제든지 계약을 파기시킬 수 있고,매수자는 취소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으로 일방적으로 매도자에 유리한 규정"이라며 "과거에도 수차례 M&A(인수·합병)전에 참여해 봤지만 이번처럼 원칙없는 매각절차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점 하나 없는 소형 증권사인 KGI증권 매각이 지나치게 비밀스럽고 불투명하게 '매도자 우위'로 진행되면서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실제 인수전에 참여하고 있는 업체들은 하나같이 "매각 과정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이런 방식으로 계속 진행될 경우 입찰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일각에선 감독 당국이 증권업 면허 '독점화'를 허용해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KGI증권의 매각을 위한 2차 입찰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현재 입찰 대상자로 선정된 업체들 중 어느 곳도 인수 가격을 결정하지 않고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이날 입찰 불참 방침을 공식 확인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다른 곳도 이번 매각절차에 불만을 제기하며 뒤따라 인수 계획을 포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인수전 참여 업체들은 무엇보다 매도자 측이 자기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거래를 하기 위해 매각 절차를 지나치게 불투명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이달 초부터 진행된 입찰 대상업체들의 KGI증권 실사의 경우 현장실사가 아닌 온라인실사로 대신했다. 통상 매각회사에 대한 실사는 해당 회사의 자산이나 영업 현황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데 인터넷 데이터룸에 라자드 측이 올려놓은 수치만 보고 판단하도록 한 것이다.

입찰 참여 대상자나 일정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것도 인수자끼리 경쟁을 부추겨 매각 가격을 최대한 높이겠다는 전략이라는 게 업계의 불만이다. 한 관계자는 "23일 예정된 2차 입찰이 마지막 입찰이 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며 "아마 입찰자들이 써낸 가격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또 한 차례 입찰을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렇자 입찰 참여업체들은 더이상 주간사 하는 대로 끌려다닐 수 없다며 국민은행처럼 입찰을 아예 포기하거나 입찰에 참여하더라도 가격을 최대한 낮춰 써내겠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금융감독 당국이 증권업 라이선스 독점 허용 비판을 의식해 신규 허가 여부를 신중히 검토키로 하면서 굳이 프리미엄을 높게 주면서까지 인수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KGI증권은 당초 원하는 값에 매각을 못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결과적으로 자기 꾀에 자기 발등이 찍힌 셈이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