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인적자원부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공동 개발한 '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 연구'를 일선 학교가 아닌 공공도서관과 시도교육청 등에만 배포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이로써 '고등학교에 직접 배포해 시장 경제 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로잡겠다'는 당초 취지는 상당 부분 퇴색하게 됐다.

김경회 교육부 인적자원정책국장은 이날 "새 경제교과서 1500부를 지난주 시도교육청 및 지역교육청 자료실에 3~5부씩,산하 연구원 및 연수원에 2부씩,직속 도서관에 4부씩 배포했다"며 "일선 학교에 보내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배포 범위가 넓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전경련이 공동 개발자이긴 하지만 배포는 전적으로 교육부 소관이기 때문에 따로 (전경련의) 동의를 구하진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교육부의 이 같은 설명은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부는 그동안 '시장경제'를 강조한 경제교과서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균형 잡힌 교육을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현재의 교과서들이 지나치게 '좌(左)편향'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해 2월 전경련과 '경제교육 내실화를 위한 공동 협약'을 맺었고 그 일환으로 '차세대 경제교과서' 제작에 들어갔으며 교과서 제작이 끝난 올 2월에도 '새 교과서를 각 고교에 1부씩 보급해 교과 지도에 활용토록 하겠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그런 교육부가 이처럼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은 전교조 등 진보단체들의 압력 때문이다.

교과서 제작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전교조 입장을 옹호하는 청와대와의 코드 맞추기"라고 평가했다.

실제 이번 파동도 교육부가 교과서 내용 일부를 공개하자 전교조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진보단체에서 "지나치게 기업의 입장만 반영했다"고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교육부는 진보단체의 반발이 거세지자 저자명에서 교육부를 빼달라고 전경련에 요청해 결국 책 표지 하단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교육부와 전경련이라는 저자 표기를 집필진 교수들이 속한 한국경제교육학회로 바꾸기로 전경련과 합의했다.

그래도 진보단체의 항의가 계속되자 교육부는 지난 8일 △정부의 시장 개입을 옹호한 내용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유엔 자료 △분배의 중요성을 부각한 스웨덴 사례 등 노동계 쪽 시각이 반영된 10쪽 분량의 부록을 첨가하기로 결정했다.

이 부록은 원래 저자인 한국경제교육학회가 아닌 교과서발전 자문위원 4명에 의해 만들어졌다.

결국 노동계의 압력에 반(反) 시장적인 내용을 추가했던 교육부가 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의 일선 학교 배포마저 포기함에 따라 현행 경제 교육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교육부와 함께 이 책의 공동 개발자인 전경련도 책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경제교과서 개발 예산 1억원의 절반인 5000만원을 투자한 전경련은 교육부가 진보단체의 압력에 못이겨 저자명을 바꾸자고 했을 때 동의해 줬다.

또한 교육부가 이 교과서를 일방적으로 학교가 아닌 도서관 등에만 배포했는데도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경련 실무자들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노코멘트"로만 일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오영세 뉴라이트교사연합 사무처장은 "학교 배포가 무산됨에 따라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하고자 했던 근본적 목적이 희석됐다"면서 "교육부는 물론 전경련까지 지나치게 정부의 눈치를 살피느라 현실에 안주하고 방향성을 잃은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