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1978년 고 조중훈 회장의 호를 딴 '정석호'가 취항하며 해운시장에 뛰어든 회사는 30년만에 자산과 매출액은 6조원대로 올라섰다. 그러나 창립 30주년을 자축 하기에 앞서 한진해운은 처한 작금의 현실과 안팎의 사정은 그리 녹록한 상황은 아닌듯 싶다. 어쩌면 창립이래 최대 위기라는 말이 어울린지도 모른다. 세계 해운업계가 인수합병(M&A)와 업무제휴를 통해 덩치 키우기에 분주한 반면, 수장을 잃은 한진해운은 적대적M&A와 집안내 지분다툼 등에 휘말리며 일년에 한계단씩 세계 해운업계 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지난 1분기에는 환율하락과 컨테이너선 운임하락 등으로 465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실적도 크게 악화했다. 한진해운은 고 조중훈 회장이 타계한 이후 3남인 故 조수호 회장이 맡아왔다. 고 조수호 회장은 1979년 미국 남가주대 경영학과 졸업과 동시에 대한항공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았고, 이후 1985년 한진해운 상무를 시작으로 고 조중훈 회장이 타계한 이듬해인 2003년부터 한진해운 회장에 취임했다. 2002년 당시 한진해운의 총 자산은 6조 1,341억원, 연매출 6조 3,199억원이었으며, 2003년 세계 서열은 5위였다. 그러나 이후 세계 컨테이너선 복량 순위는 1년에 한계단씩 내주며 지난해에는 8위까지 밀려났다. 자산과 매출 역시 지난해 6조원과 6조 513억원으로 고 조중훈 회장이 타계한 해인 2002년에도 못미친다. 창립 30주년을 맞아 열린 행사에는 고 조수호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부회장과 박정원 사장 등이 참석, 장미빛 청사진을 내놨다. 박정원사장은 발표한 '비전 2017'을 보면 10년뒤 2017년에는 매출 24조원, 영업이익 2조원, 기업가치 15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는 현재 매출의 4배에 달하는 것으로 컨테이너선과 벌크선 사업 등 외에도 3자물류 사업과 수리 조선소사업 등 신규사업에 진출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하지만 이러한 비전을 달성하기에 한진해운이 넘어야 할 산은 첩첩산중이다. 우선 오너부재로 인한 강력한 리더십이다. 고 조수호 회장 타계 이후 부인인 최은영여사가 등기이사 부회장직에 올랐지만 5년간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회사를 턴어라운드 시키기엔 아직 역부족이라는 해운전문가들의 평이다. 여기에 한진해운 지분을 둘러싼 잡음 역시 최 부회장을 막고 있는 걸림돌이다. 끊임없이 M&A설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 배경이다. 고 조수호 회장의 지분을 최은영 여사와 두 딸인 유경씨와 유홍씨가 물려받았지만 이들의 지분과 우호지분인 양현재단을 합해 8.02%에 불과하다. 고 조수호 회장의 형인 조양호 회장이 갖고 있는 한진해운의 지분은 대한항공 등을 포함해 11.06%로 최은영 여사측의 지분보다 많다. 실질적인 주주는 조양호 회장측으로 고 조중훈 회장의 타계 이후 유산상속을 둘러싸고 4형제간 갈등속에 계열분리된 한진중공업과 메리츠증권 등과는 달리 계열분리 하지 않은 것도 걸림돌이다. 지난 2004년 조양호 회장은 "추가 계열분리는 없고 당분간 현 체제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한진해운을 계열분리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했다. 이후 조양호 회장은 최은영 여사가 등기이사 부회장직에 오르는 것에 동의하며 한진해운에 대한 M&A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한진해운의 실질적인 대주주가 대한항공이라는 점과 계열분리에 뜻이 없다는 것은 한진해운 미래에 또 다른 변수가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이와함께 최은영 부회장이 당장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최 부회장은 등기이사에 오르며 고 조수호 회장이 갖고 있던 한진해운 주식 140만주와 대한항공, 한진중공업 등의 지분을 두 딸인 유경씨와 유홍씨와 함께 상속받았다. 이를 상속받으며 내야할 세금은 무려 840억원.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여동생인 신정숙여사의 딸인 최은영 여사는 이 때문에 최근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두 딸이 상속받은 지분에 대한 상속세가 470억원에 달해 개인재산이 없는 두 딸의 세금처리 문제가 고심인 것이다. 이들의 지분을 팔아 세금을 낼 경우 한진해운에 대한 지배력은 더욱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미성년자인 둘째 딸 유홍씨는 이번 상속으로 미성년자 주식부호 1위에 올랐다. 납세의 의무를 지키는 동시에 경영권 방어를 해야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기업사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 지난 5년간 매출 정체, 세계 시장에서 일년에 한계단씩 밀리고 있는 한진해운. 남편의 바통을 이어 최은영 부회장이 새로운 사령탑에 올라 현정은 회장과 나란히 해운업계 여 사령탑 시대를 열었다. '비전 2017'을 내세우며 새로운 도전을 선언했지만 기업경영 경험이 전혀 없는 그녀에게 놓인 험난한 가시밭길을 어떻게 헤처나갈 지 업계와 투자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연사숙기자 sa-sook@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