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여자친구에게 인사 및 급여에서 특혜를 준 혐의로 사임 압력을 받아왔던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가 결국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다.

세계은행은 15일(현지시간) 긴급 이사회를 열었다. 비난 여론이 쏟아지고 있는 울포위츠 총재에 대한 처리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울포위츠 총재는 이사들 앞에서 진술을 통해 자신의 개인적 실수와 업무 수행 능력이 별개로 다뤄지길 원한다며 선처를 요청했다.

그는 "나의 지도력과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해 대화하고 싶다"며 "1년여 전에 일어난 문제가 논란이 되는 것보다 그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껏 세계은행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며 총재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여자친구의 급여를 올리는 등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해서는 변호사의 자문을 따른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해명을 들은 이사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총재를 해임하거나 사임을 요구할 수 있고 불신임 결의도 가능하다.

상황은 울포위츠에게 나쁘다. 울포위츠를 감싸던 백악관이 한발 빼는 듯한 분위기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오후 "현재 울포위츠의 사퇴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만 해도 백악관 측은 울포위츠가 많은 실수를 한 것은 사실이나 해고될 정도는 아니라며 그를 옹호했다.

그동안 울포위츠 총재가 유럽 각국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사임 압력을 꿋꿋이 버텨냈던 것도 백악관의 강력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유럽 국가 관리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미국 편에 서긴 했지만 캐나다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반대했다"며 "분위기 파악을 시도했던 미국이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울포위츠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사임 압력과 함께 미국 국무부도 울포위츠 총재의 여자친구로 알려진 중동 문제 전문가 사하 리자가 세계은행에서 국무부로 파견되며 봉급이 인상된 경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울포위츠는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이면에는 유럽과 미국의 '파워 게임'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전통적으로 세계은행 총재 자리에 대한 지명권을 갖고 있는 미국이 신보수주의(네오콘)의 대표 인물인 울포위츠를 내세워 세계은행을 미국의 외교 정책에 활용해왔고,이에 대한 유럽 쪽의 강한 반발이 울포위츠에 대한 사임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울포위츠는 또 조직 내부 인사에서도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인물 위주로 요직을 구성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미국 국무부 부장관 재직시 이라크전을 기획한 그에 대해 유럽 국가들의 비난이 가중된 이유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