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산업협회 출범은 현대판 도원결의가 될 수 있을까.

삼성전자 LG필립스LCD 삼성SDI LG전자 등 '디스플레이 패널 4사'의 힘을 모으기 위한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가 14일 출범했다.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은 이날 서울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한국 일본 대만 업체들이 '3국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삼성,LG 등 우리 기업들이 힘을 모으기로 한 건 '도원결의'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특히 일본과 대만이 밀월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과 LG의 협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김 장관은 강조했다.

그러나 협회 출범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산자부의 시각과는 딴판이다.

어느 업종보다도 치열한 '진흙탕 싸움'을 벌여온 디스플레이 업계가 협회 하나 만들었다고 갑자기 '동반자'가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협회 출범을 앞두고 협회장 자리를 두고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가 신경전을 벌여온 탓에 업체간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진 상태다.



◆시작부터 삐끗한 '한지붕 4가족'

협회 출범을 통해 정부와 업계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효과는 패널 사이즈를 포함한 표준 통일.LCD패널을 만드는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가 서로 다른 인치대의 패널을 내놓고 표준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가격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소재·장비를 제공하는 협력업체는 이중 투자를 감수해야 했다.

업계는 이날 '이 같은 낭비를 없애고 협력을 강화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행사장을 빠져나온 CEO들의 말은 행사장 안에서와는 너무 달랐다.

협회장을 맡은 이상완 삼성전자 LCD총괄 사장은 "제품 사이즈는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라며 "업체들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제품을 결정하고 투자를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내 업체들 간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협력도 중요하다.

수직계열화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라며 협회 출범 효과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경계했다.

권영수 LG필립스LCD 사장도 "이 사장을 만난 건 이번이 두 번째"라며 "너무 오랫동안 교감이 없었기 때문에 협력을 위해선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사장과 권 사장은 모두 "8세대(50인치대 TV용) 패널부터 사이즈를 통일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디스플레이산업협회는 LCD산업협회?

디스플레이산업협회라곤 하지만 삼성SDI와 LG전자 등 PDP 진영의 CEO들은 이날 주인공이 아니었다.

협회장 자리를 두고 신경전을 벌여온 이상완 사장과 권영수 사장이 각각 협회장과 수석부회장을 맡았고,김순택 삼성SDI 사장과 강신익 LG전자 디스플레이사업본부장은 부회장 직함을 받았다.

LCD 진영에 밀린 PDP 업계의 최근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김순택 사장 대신 행사에 참석한 심임수 삼성SDI 부사장은 행사 후 "일부 부품의 공동 구매 외에는 LCD업계와 PDP업계가 상생할 만한 분야는 없다"고 말했다.

협회라는 하나의 지붕 아래 모였지만 전혀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4개 업체가 협력을 이뤄가기는 쉽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행사에 참석한 LCD 장비업체 관계자는 "패널 4사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협회 출범을 학수고대해온 중소 협력업체에 대한 배려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계열-LG계열이라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타파해 시장을 넓혀주고 △공동 연구·개발(R&D)을 통해 소재와 장비의 국산화율을 높이는 등 대·중소기업 협력 계획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