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조선업체들이 30년 만에 설비를 증설한다.

1970년대 후반 이후 경쟁력이 떨어져 줄이기만 했던 선박 건조 설비를 늘리기로 한 것.사실 최근 수년간 조선업 호황에도 일본 조선사들은 설비 확장을 조심스러워했다.

최대 라이벌인 한국 기업과의 경쟁이 부담스러웠던 탓이다.

그러던 일본 기업들이 올해부터 증설에 나서기로 한 건 "한국과 붙어 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간의 임금 억제와 엔저로 "한·일 간 생산비용 격차가 사라졌다"(다니구치 유이치 가와사키조선 사장)는 게 일본 조선사들의 판단이다.

일본 조선업계에선 "내친김에 2000년 한국에 내줬던 '세계 조선 1위' 자리도 되찾아 오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이시카와지마 하리마 중공업(IHI)은 1996년부터 생산을 중단했던 아이치현 조선소에 30억엔(약 240억원)을 투자해 연내 조업을 재개키로 했다.

일단 이곳에선 벌크선 생산을 시작한 뒤 앞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도 건조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IHI는 일본 내 조선소가 3개로 늘어나고,현재 110만총톤(GT)인 생산능력도 10% 정도 늘어난다.

미쓰비시중공업도 2010년까지 400억엔을 투자해 나가사키조선소와 고베조선소의 생산능력을 현재 156만총톤에서 10% 늘리기로 했다.

가와사키중공업 자회사인 가와사키조선은 앞으로 2년간 100억엔을 투자해 LNG선 건조 설비를 증설할 계획을 확정했다.

일본 조선사들이 설비 증설에 나선 건 무려 30년 만이다.

일본 조선업계는 1970년대 후반 이후 오일쇼크 엔고 등으로 경쟁력이 떨어져 생산 설비를 계속 줄여왔다.

일본 조선업계의 근로자 수는 1975년 16만여명에서 현재는 4분의 1 수준인 4만3000명으로 급감한 상태다.

2003년까지는 정부의 증설 규제까지 있었다.

규제가 풀린 뒤에도 조선사들은 생산설비를 늘리지 않고,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수요 확대에 대응해왔다.

일본 조선사들이 설비 증설에 나선 표면적 배경은 조선업 호황이다.

중국 등의 고속성장으로 최근 수년간 해상 물동량이 늘면서 세계적인 선박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증설엔 조심스럽던 일본 조선사들이 마침내 설비 확대에 나선 진짜 이유는 한국 기업에 대해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은 한국 기업의 비용 상승으로 그간 30% 정도 벌어져 있던 한국과의 선박 건조 비용 격차가 이젠 거의 사라졌다고 보고 있다.

실제 한국은 원화 가치가 2000년 이후 미국 달러화 대비 20%나 올랐다.

선박 건조 비용의 30%를 차지하는 인건비도 매년 6~7%씩 늘고 있다.

반면 일본 기업은 그동안 임금 상승을 극도로 억제해 왔다.

여기에 엔저 순풍까지 불어 가격경쟁력이 한껏 높아진 상태다.

배 한 척당 도크 점유시간을 줄이는 등 효율향상에 힘써온 것도 경쟁력 회복에 주효했다.

일본 기업들은 이제 한국보다 세계 선박 건조 3위의 중국을 경계한다.

일본 업계 관계자는 "중국도 최근 무섭게 설비를 증설하고 있다"며 "아직은 기술이 일본에 비해 열세이지만 앞으로 중국과의 경쟁이 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