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면 어김없이 미국 케네디국제공항으로 달려가 항공기의 이착륙을 지켜보며 도피와 자유를 꿈꿨던 헝가리 이민자 집안의 한 12세 소년이 50여년만에 824기의 항공기를 거느리며 세계 항공업계를 좌지우지하는 대부(代父)로 우뚝 섰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인터내셔널 리스 파이낸스 코퍼레이션'(ILFC)의 스티븐 우드바르-하지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와의 회견 내용을 10일자 인터넷판에 실었다.

ILFC는 주문중인 254기를 제외하고도 보잉과 에어버스 등이 제작한 항공기 824기를 보유한 최대 항공기 리스업체. 아메리칸항공(679기)과 에어프랑스(265), 브리티시에어웨이(239), 루프트한자(245기) 등의 항공기 보유대수를 감안할 때 규모 면에서 최대 항공사들을 크게 앞섰을 뿐 아니라 지난해 매출 41억 달러, 이익 7억1천600만 달러를 내 수익에서도 질투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에어라인탓컴의 에드먼드 그린스렛 편집장은 "우드바르-하지 회장은 항공업계의 신으로 누구도 그만큼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며 "그는 항공기 제조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세계 항공산업의 자금줄"이라고 잘라 말했다.

항공사들은 현금이 부족한 소비자들이 차를 임차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비행기를 리스한다.

적은 돈으로 새로운 모델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하늘을 나는 항공기의 거의 절반이 리스된 것이다.

이 업계에서 우드바르-하지 회장은 제너럴일렉트릭을 제치고 가장 큰 손으로 군림하고 있다.

특히 그는 보잉에서 706기, 에어버스에서 600기의 항공기를 구입하고 있어 이들 2개 업체는 파리에어쇼를 앞두고 우드바르-하지 회장에 대한 구애공세를 펼치고 있다.

에어쇼에서 우드바르-하지 회장이 새로운 큰 주문을 할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헝가리 이민자 집안 출신인 그는 캘리포니아대학 재학중이던 1960년대 동료 이민자들로부터 돈을 거둬 관련계약을 성사시키는 발군의 비즈니스 감각을 발휘했으며 이어 1973년 2명의 동료와 함께 당시로서는 미개척 분야인 항공기 리스산업에 뛰어들어 DC-8 기종을 에어로멕시코에 리스하는데 성공했다.

35년 전 그가 일구기 시작한 항공기 리스산업은 지금 1천290억 달러의 거대 시장으로 급성장해 있다.

우드바르-하지 회장은 회견에서 "냉전이 불타오르던 1950년대 철의장막 뒤의 아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많은 이들이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며 "어렸을 때 많은 가르침을 주입받으며 마치 죄수처럼 갇혀있다는 느낌을 가지면서 나는 도피와 자유를 위해 비행기와 혼연일체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항공산업은 고객에게 봉사하고 항공기 제조업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항공편을 위해 최적화될 때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에어버스에 100억 달러를 들여 A350 중형기를 다시 디자인하도록 요구한 것도 항공산업에 대한 그의 신조와 영향력을 보여준 사례로 꼽히고 있다.

우드바르-하지 회장은 미국 대형 항공업체들의 오만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대형 항공사들은 항공산업 여명기부터 최고의 존재처럼 행동하며 좋았던 시절에는 모든 이익을 챙기고 나빠지면 남이 희생하기를 바란다"고 꼬집었다.

우드바르-하지 회장의 개인 재산은 31억 달러로 추산된다.

미국인 가운데 83위이다.

그는 6천500만 달러를 사회에 기부해 스미스소니언 국립우주항공박물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영광도 누렸다.

존 리히 에어버스 수석세일즈맨은 "우드바르-하지 회장은 항공산업과 살며 숨쉰다"며 "그는 부인과 데이트할 때 조차 활주로 끝에 가서 부인에게 하늘을 나르는 DC-8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