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열린 중국 베이징모터쇼에 신형 싼타페와 쏘렌토를 전시했던 현대·기아차 관계자들은 충격적인 모습을 목격했다.

중국의 황하이자동차와 톈마자동차가 선보인 '치성'과 '영웅'이 각각 싼타페와 쏘렌토를 너무나 빼닮았기 때문.치성은 라디에이터 그릴은 물론 전조등 안개등 등이 싼타페와 거의 같았다.

톈마의 영웅도 쏘렌토를 그대로 베낀 '짝퉁'이었다.

더욱이 톈마 측은 "중국판 쏘렌토다"며 자랑까지 늘어놓았다.

한국의 자동차 기술이 통째로 중국에 넘어가고 있다는 시중의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검찰이 현대·기아자동차의 핵심기술을 중국에 넘긴 산업스파이 일당을 10일 적발함에 따라 국내 자동차 업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특히 이번 사건의 피해규모가 2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면서 국내 자동차 산업이 중국에 덜미를 잡히는 시기가 앞당겨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짝퉁 쏘렌토' '짝퉁 마티즈' 이유 있었다

이번에 검찰이 자동차 기술유출사건을 적발함에 따라 '짝퉁 쏘렌토'가 중국에 등장한 이유가 명확해졌다.

더구나 유출 표적이 된 기술에 쏘렌토뿐 아니라 앞으로 나올 신차인 HM(프로젝트명)까지 포함돼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올 10월 출시될 HM은 기아차의 야심작으로 현대차의 럭셔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베라크루즈와 동급이다.

중국의 짝퉁차는 이뿐만 아니다.

중국 치루이차는 GM대우의 경차 마티즈를 빼닮은 소형차 QQ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이 차량은 중국은 물론 중동지역 등에서 마티즈보다 훨씬 싼값에 불티나게 팔린다.

쌍용차의 렉스턴과 흡사한 짝퉁 차량도 중국에 등장했다.

앞서 2005년에는 현대차가 엔진 및 내구성 관련 기술을 중국 업체로 유출시키려 한 협력업체를 자체 적발한 사례도 있다.

현대차의 또 다른 협력업체에서도 일부 직원이 퇴사한 뒤 별도 회사를 차려 소형차 설계기술을 중국 업체에 넘기려다 적발됐다.

중국은 한국차만 베끼는 게 아니다.

일부 중국 차량은 BMW 특유의 키드니(신장) 라디에이터 그릴을 그대로 모방했다.

도요타의 야리스,벤츠의 스마트 등과 흡사한 자동차도 중국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만든 짝퉁 자동차 부품은 이미 국내에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중국의 영세 부품업체들은 한국 제품을 위조해 중국뿐 아니라 중동지역에까지 유통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유출로 경쟁력 상실 우려

국내 자동차 핵심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될 경우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빠른 속도로 좁혀질 수밖에 없다.

이미 중국은 적지 않은 한국 자동차 기술을 획득한 데다 쌍용차 인수 등을 통해 '합법적인 기술 유출'까지 이뤄지고 있다.

현재 한국과 중국의 자동차생산 기술격차는 6년을 유지하고 있고,2010년에는 3년으로 좁혀질 것으로 전망됐으나 이번 사건의 파장을 볼 때 그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생산기술이 중국의 자동차회사로 전부 유출될 경우 2010년께 한·중 간 자동차 기술격차가 1.5년으로 급속히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국내기업 400개사를 대상으로 산업기밀 유출실태를 조사한 결과 5개사 가운데 1개사가 기밀유출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유사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전 사업장에 문서보안솔루션과 사용자 인증시스템 적용을 확대해 자체 보안감시 시스템을 강화키로 했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