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투자 부진과 소비 침체,실질소득 정체로 장기 불황에 빠져 있던 국내 경제가 기지개를 켜는 분위기다.

기업들의 투자가 늘어나고 가계의 실질소득과 소비가 다시 증가하는 등 경기가 저설비투자,저소비,저실질소득의 기나긴 3저(低) 터널을 빠져 나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은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소비와 투자 등 내수지표가 개선되고 있다"며 "우리 경제가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8일 말했다.

정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올해 들어서도 정보기술(IT)과 반도체 투자가 계속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설비투자 증가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설비투자는 지난 1분기 중 11.2% 증가(전년 동기 대비)하면서 2000년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할 공산이 커졌다.

반도체 장비와 사무기기 등의 설비투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고,기계 수주도 활발해 향후 설비투자 전망도 밝은 편이다.

2005년의 설비투자는 2000년에 비해 겨우 1.8% 늘어나는 데 그쳤고,10년 전인 1996년과 비교해도 11.4% 증가하는 데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설비투자가 다시 늘어남에 따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시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조사한 '설비투자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2003년 마이너스였지만 지난해에는 0.8%포인트로 조금씩 회복하다 올해 1분기에는 1.2%포인트로 뛰어올랐다.

1분기 경제성장률 4% 가운데 1.2%포인트가 설비투자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신용카드로 빚을 내 물건을 과도하게 사들였던 2003년의 카드 버블 붕괴 이후 침체됐던 민간소비가 최근에 다시 늘어나고 있다.

가구 가전제품 승용차 등의 판매가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올해 1분기 중 내구재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증가했다.

이에 따라 1분기 중 전체 소비재 판매도 7.2% 증가했다.

소비재 판매가 늘어나면서 민간소비의 경제성장 기여도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분기 중 민간소비는 전분기에 비해 1.3% 늘어나 4% 성장률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민간소비는 지난해 2분기 이후 3분기 연속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 기대지수와 평가지수도 좋아지고 있어 체감경기는 나아질 전망이다.

여기에다 최근의 주가 상승으로 자산 효과(wealth effect)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조원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지난 1일 국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민간소비와 설비투자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특히 하반기부터 내수 부문이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도 국민들의 실질적인 소득이 증가하지 않던 괴리 현상이 올해부터 빠르게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GDP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4~5%의 성장세를 줄곧 유지해 왔으나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2005년 0.7%,지난해 2.3%에 그치는 등 경제성장률에 훨씬 못 미쳤다.

반도체와 가전제품 등 국내 기업들이 수출하는 제품의 단가는 계속 하락한 반면 원유와 원자재 등 각종 수입품의 단가는 오르는 교역조건 악화로 인해 실질적으로 손에 쥐는 돈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원자재 수입가격 상승세 둔화 등의 영향으로 GNI 증가율이 높아져 GDP와의 괴리를 좁히고 있다.

지난해 3분기 GNI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2.3%였고,4분기에는 3.3%로 높아졌다.

국민의 실질소득 증가율이 성장률에 근접하는 추세가 이어질 경우 경기 회복에 촉매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