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장정도 오르기 힘든 깔딱고개를

넘어온 노파는

향 한 뭉치와 쌀 한 봉지를 꺼냈다

이제 살아서 다시 오지 못할 거라며

속곳 뒤집어 꼬깃꼬깃한 쌈짓돈도 모두

내놓았다

그리고는 보이지도 않는 부처님전에

절 세 번을 올리고

내처 깔딱고개를 내려갔다

시방 영감이 아프다고

저녁상을 차려야 한다고

-이홍섭 '적멸보궁-설악산 봉정암'

그렇게 세월이 흘러 생이 저물고 있다. 숱한 만남과 그 만큼의 이별 끝에 여기까지 왔다. 결국 누추한 삶의 마지막 한 겹만 남았다. 온 힘을 다해 살았지만 많은 것들이 미완으로 남겨졌다. 이젠 삶을 가꿔갈 시간도 정열도 없다. 분노도 욕심도 희망도 모두 버렸다. 몸져 누운 영감님 저녁상 차리는 일이 살아 가는 유일한 이유다. 부처님전에 절을 올리는 것은 세상에 대한 마지막 이별의식일 것이다. 저세상에서 다시 만나질까를 묻는 것은 소용 없는 일이다. 피해 갈 수 없기에 받아들일 뿐이다. 삶은 늘 죽음을 예비하고 있기에 이토록 쓸쓸한 것이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