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지는 모델들

모델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지난해 브라질의 아나 카롤리나 레스톤(21) 등 3명의 모델이 거식증으로 사망했다.

올해는 우루과이의 두 자매 모델이 심장쇼크로 사망했는데 심장마비의 원인이 영양실조라고 알려졌다.

불행한 사건들이 이어지자 국제 패션계에서는 너무 마른 모델을 기용하지 말자는 움직이 일고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 정부와 패션업계는 '공동대응안'을 마련,모든 패션기업들로부터 건강하지 않은 깡마른 모델을 강제로 추방하는 자제 안에 서명을 받아낼 방침이라고 한다.

지난 2월 마드리드 패션위크는 자체 기준에서 미달된 너무 마른 모델 5명의 출연을 거부했다.

◆ 에너지 균형

그런데 왜 먹지 않는 모델들은 죽음에 이를까? 그야 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굶는 기간으로만 보면 더 오래 굶으셨던 게 확실한 어떤 스님은 살아계시지 않는가? 모델들의 경우 병원 침대에 눕거나 명상 수련하는 자세로 굶은 것은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일하면서 굶고,굶으면서 일하는 최악의 기아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몸의 에너지 균형이 깨졌다고 할 수 있다.

몸에 들어오는 에너지에 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던 것이다.

몸에 들어오는 것에 비해 많이 쓰게 되면 에너지 일정량의 법칙(열역학 제 1법칙으로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해 몸이 오그라들게 되어있다.

몸을 오그라뜨리는 게 그녀들의 목적이기도 했으니 안타깝지만 그녀들은 뜻한 바를 너무 성공적으로 이루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즉 열역학 제1법칙이라는 우주적 법칙에 따르다가 사망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 마른 모델의 항변

'우리가 균형을 깼기 때문에 죽었다고? 천만에 우리는 균형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뼈를 깎는 노력을 했던 거라고.' 고인(古人)들의 항변이 들리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그들은 자기 몸을 누구보다도 더 균형 있게 가꾸고자 했을 것이다.

너무 마르면 추하다고 쉽게 말하지만 추해지려고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없다.

패션업계가 자성운동을 해야 할 정도로 마른 모델을 선호한다는 것은 어쨌든 사람들의 미적 감각이 대체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미녀에 대한 기준이 놀랍게도 획일적이라는 연구가 있다.

2000년 동안이나 이 기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데이비드 싱이라는 진화심리학자는 미녀들의 허리/엉덩이의 비율을 연구해 유명해졌다.

그의 가설에 따르면 시대에 따라 미인대회에 나오는 미녀들의 신장이나 몸무게는 변해도 허리/엉덩이의 비례는 0.7을 유지한다고 한다.

이 비례는 문화적인 차이도 없다.

다양한 문화권에 있던 사람들이 미녀로 꼽는 사람들을 조사해 보아도 결과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말 균형미는 보편적이다.

시대와 문화적 차이를 초월한다.

그런 균형미를 추구하던 여성들이 모두 죽음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중요한 속성인 균형미와 몸의 에너지의 균형과는 다른 균형인 것만은 확실하다.

◆ 태풍의 역할

태풍이 우리나라를 비켜 이웃나라로 방향을 틀면 대통령은 피해 국가의 원수에게 전화를 걸어 심심한 유감을 표하시지만 소식을 전하는 기상 캐스터들의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태풍이 주는 이로운 점도 많다고 지적한다.

여름 가뭄 때 태풍은 물 기근을 해소해 주고,바다의 물을 뒤집어 파도를 일으켜 물 속에 산소를 풍부하게 한다.

또 물이 뒤집히면서 바다 밑에 침전되어 있는 먹이를 떠올리므로 물고기가 그 먹이를 먹고 물 속에 풍부해진 산소를 빨아들인다.

해마다 우리나라 남해에서 발생하는 적조 현상도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없어지곤 한다.

무엇보다 태풍이 가져다주는 가장 유익한 점은 지구의 에너지 평형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태풍은 지구표면의 에너지 분포를 고르게 하는데 일조한다.

적도의 남아도는 열이 태풍을 통해 고위도 지역으로 분산되기 때문이다.

(고교 지구과학 2)

◆ 균형을 좇는 사람들

미녀들만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도 균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과학자들은 어떤 현상을 균형의 결과로 설명하려 한다.

또 균형을 이용해 변화의 방향을 예측하려 한다.

결국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우주적 원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남들은 신의 저주쯤으로나 생각하는 태풍을 균형의 결과나 원인으로 보려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때 과학자들이 말하는 균형은 미녀들이 생각하는 균형미와는 다르다.

과학자들의 균형은 힘의 균형이다.

과학자들에게 있어 어떤 모습은 상반된 힘들 간의 균형의 결과로 이해된다.

예를 들어 풍선을 불어보자.풍선을 불수록 풍선의 형태가 변한다.

그 형태는 풍선 내부의 공기가 풍선을 밖으로 밀어내는 힘과 풍선의 탄력,그리고 풍선외부 대기압이 균형을 이룬 결과다.

풍선에 바람을 넣어 주면 내부에서 밖으로 밀어내는 힘이 강해져 풍선이 커진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풍선의 탄력을 넘어서버리면 풍선은 더 이상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터진다.

헬륨 풍선이 자유 비행을 하면 하늘로 계속 올라가다 결국 터져버린다.

내부의 헬륨 양은 늘지 않았지만 풍선을 밖에서 압박하는 대기압이 낮아졌기 때문에 풍선이 계속 부풀어 나는 게 균형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가 상반된 힘의 균형의 결과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풍선의 부피를 늘리는 두개의 방법을 알게 된다.

내부에 공기를 불어넣거나 외부 대기압을 낮추면 된다.

◆ 두 가지 균형

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과학자들이 애용하는 균형은 힘의 균형을 의미한다.

이를 역학적(力學的) 균형이라 부르자.모델들이 목숨을 걸고 이루고자 하는 균형은 사람들의 눈에 좋아 보이는 균형이다.

안목(眼目)의 균형이라 할 수 있다.

이 두개의 균형은 출발이 다르다.

일치할 때도 있지만 그건 매우 특수한 경우다.

그리고 이 둘의 일치하는 특수한 경우는 사람들이 꿈꾸는 것이기도 하다.

봄이 되면 봄나물을 먹고 싶다.

우리 몸이 봄이 되면 필요한 영양소가 있다.

역학적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다.

이 영양소가 봄나물에 많이 있기 때문에 이 나물을 먹고 싶어진다고 한다.

몸에도 필요한 것을 먹고 싶어진다는 것은 역학적 균형과 안목의 균형이 일치하는 경우다.

정말 환상적이다.

주머니 사정 즉,예산의 균형만 맞아주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 학자들이 고집하는 설명방식일 뿐이다.

초콜릿,술의 경우는 이렇게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초콜릿을 먹고 싶은 안목의 균형은 몸의 역학적 균형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몸에서 아무리 당분은 그만이라고 말해도 초콜릿을 바라보는 미적 감각은 확고한 경우다.

결국 이 불일치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낸다.

사망한 모델들은 극단적 경우긴 하지만 어쨌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역학적 균형과 안목의 균형간의 심각한 불일치였다고 할 수 있다.

오태민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slowforest@ed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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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논술공부는 발가락을 사용하자

코난 하면 요즘 학생들은 '명탐정 코난'을 떠올리지만 '미래소년 코난'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따로 있다.

지나친 물질문명으로 환경이 파괴된 미래사회에서 활약하지만 원시적 순수함을 잃지 않은 소년의 이야기다.

코난은 많은 능력을 갖추었는데 무엇보다도 발가락을 손가락처럼 사용할 줄 안다.

발가락으로 창도 던지고 드라이버도 돌릴 수 있어서 그는 참으로 유능해졌다.

논술공부는 발가락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움직여 보는 것이다.

지식을 이해하고 공식을 외우고 공식을 적용하는 게 전부였던 기존의 공부방식과 다르다.

교과서를 의심하면서 이해하고 엉뚱한 곳에 그 지식을 적용해 보고 누가 뭐래도 자기만의 생각을 만들어 보는 과정이다.

누구나 움직이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면 고통스럽기만 할 뿐,생산성은 보잘 것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믿음이다.

발가락에도 근육이 있다는 믿음 말이다.

처음에는 엉망이 되겠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누구나 발가락으로 밥도 먹고 그림도 그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한 학기가 지나지 않아 자기만의 생각을 토해내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코난처럼 아주 유능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