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법무를 담당하는 사내 변호사(in-house counsel)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과연 이들이 바라보는 스스로의 역할과 비전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기업 내 법률자문이나 외부 로펌 변호사의 가교 역할을 넘어서서 법률적 지식을 기반으로 기업 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진짜 '비즈니스맨'이 되겠다는 것이다.

지난 12일 정연아(교보생명 법무지원팀·연수원 32기),오치일(SK네트웍스 재무지원실·33기),김동현(LG화학 법무팀·34기),장은서(한화그룹 법무실·35기) 등 국내 변호사 4명과 이용욱(금호아시아나 전략경영본부),서정국(현대자동차 국제법무팀) 등 미국 변호사 2명이 한 자리에 모여 사내 변호사의 현실을 짚어봤다.

이용욱 변호사는 "기업 내부 구성원으로서 사실 관계를 파악(팩트 파인딩)하고 그것을 회사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사내 전문가 그룹은 의의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아무래도 외부 로펌은 보수적이라 결국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으니 알아서 판단하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법과 기업을 모두 아는 사내 변호사들이 경영적 판단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법무법인 '세종'에서 약 3년6개월 일하다가 교보생명으로 자리를 옮긴 정연아 변호사는 "예전에도 여러 기업을 클라이언트로 배정받아 자문을 해봤지만 제3자의 입장일 뿐이었다"며 "그러나 기업에서는 내가 맡은 일과 결정을 통해 기업이 어떤 식으로 변해가는지 기업경영을 빠르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꼽았다.

물론 기업 간 중요한 계약이 체결될 경우 법률적 자문을 제공하고 사전에 오해의 소지를 없애는 '리스크 매니지먼트'도 이들의 주요 업무다.

서정국 변호사는 "법무팀이나 사내 변호사는 소송이 터지기 전에 먼저 나서야 하는 해결사"라며 "예를 들어 거래처에 돈을 떼일 것 같으면 해당팀이 법무부서를 찾아오는데 이 경우 법률적 문제를 정리해 주는 것 이외에도 가능한 해결책과 위험성을 알려주는 비즈니스 자문을 함께 한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제조,유통,판매 등 전 과정에 있어서 위험성 평가, 최고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적법한 절차 등에 대한 조언을 사내 변호사가 해야 한다"며 "해외에 공장을 많이 짓는 현대자동차의 경우 외국 변호사와 함께 코디네이터 역할까지 수행한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김동현 변호사는 "LG화학은 인수·합병(M&A)이 상시적으로 일어나는데 100억~200억원짜리는 혼자 처리하고 1000억원이 넘어가는 계약은 두세 명이 같이 처리한다"며 "계약서 만드는 과정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핵심 결정사항은 사전에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참여한다"고 말했다.

이용욱 변호사는 "최근 국내 기업들도 마인드가 많이 변했다"며 "금호아시아나의 경우 회장이 주재하는 사장단 회의에 법무팀과 홍보팀 간부가 꼭 참여하는데 곧 국내에서도 외국처럼 법률가 출신의 최고경영자가 나오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 내 변호사의 지위는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불과 4~5년 전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사내 변호사들이 채용되기 시작한 점을 감안하면 아직 벤치마킹할 만한 모델도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사내 변호사들이 겪는 어려움은 조직 내 이질감.장은서 변호사는 "사내 변호사에 대해 선입견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입사 후 몇 달 동안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여기 얼마나 있을 거냐'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장 변호사는 "입사 때부터 일반 사원이 아니라 과장 등 중간 직급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질감도 있고 수적으로도 소수이지만 한화는 법무를 당연히 있어야 할 조직이라 생각하고 같이 일하는 것을 당연시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판·검사 출신의 전관이 법률 고문이나 간부급으로 특채되는 것이 아니라 일선에서 활발하게 일할 2~4년차 변호사를 선호하는 것도 기업의 달라진 점이다.

장은서 변호사는 "최근에는 사법연수원 수료자를 곧바로 뽑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오치일 변호사는 "기업은 사내 변호사 고용에 있어 비용대비 효용성 측면에서 당장 성과가 드러나지 않으면 회의를 느낄 수 있다"며 "회사는 투자에 대해 실망하고 변호사 개인으로서도 로펌보다 경제적 보수가 적어 상호 만족도가 떨어지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혜정/박민제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