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예는 몸의 신비를 한껏 과시하고 분장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눈부신 테크놀로지와 열정적인 음악까지 가세한 무대는 가히 환상적이다.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앞 빅탑시어터(텐트극장)에서 상연 중인 캐나다 공연업체 태양의 서커스 '퀴담'은 한마디로 '기이한 체험'을 선사한다.

기예가 거의 전부인 중국과 북한 서커스와 달리 이 작품은 연기와 이야기를 곁들인 대규모 서커스쇼다.

태양의 서커스의 최근작 '카''오''러브'에 비해 독창성은 떨어지지만 11년 전 처음 등장해 '아트 서커스'를 창조해낸 가치는 여전히 빛난다.

'퀴담'은 라틴어로 '익명의 행인'이란 뜻. 여기서는 극중 인물이자 익명의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 중의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2500석의 원형극장에 불이 꺼지면 신문을 읽는 아버지와 라디오에만 귀를 기울이는 어머니,심심해서 죽을 지경인 어린 딸이 등장한다.

이 때 머리가 없는 퀴담이 우산을 쓰고 나타나 모자를 남기고 사라진다. 딸이 모자를 쓰는 순간 '신기한 나라'로 떠나게 된다.

공중고리에 매달린 채 펼치는 아슬아슬한 곡예,어린이들이 막대줄로 주고 받는 디아볼로(공중팽이) 놀이,커다란 바퀴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묘기,놀라운 근력과 집중력으로 육체의 조각상을 만드는 아크로뱃,십수명의 단원이 펼치는 현란한 줄넘기와 인간 피라미드 쌓기 장면 등에선 탄성이 터진다.

이런 볼거리들이 연계성을 상실한 채 나열된다면 기존 서커스와 차별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어린이의 꿈이 환상적인 서커스쇼로 실현된다.

단절된 사람들이 낯선 공간에서 기막힌 묘기를 즐기면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더 많은 아티스트들이 호흡을 맞춰 나갈수록 묘기의 흡인력은 강해졌다. 무대가 상징하는 익명의 세계도 온기 가득한 공간으로 변했고,따분한 세상은 상상력이 충만한 곳으로 바뀌었다.

아티스트들의 연기와 함께 음악과 무대도 환상적인 공간을 창출했다.

머리없는 행인,천둥과 번개가 치는 특수효과는 기괴한 분위기를 잘 만들어낸다. 열정적이면서도 독특한 리듬의 음악도 이색적이다.

주제의식을 지닌 이야기로 거듭나도록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조절한 점도 평가할 만하다. 고난도 동작 뒤에는 코믹한 에피소드가 뒤따라 흥분을 식혀줬다. 아티스트들은 탁월한 곡예사일 뿐 아니라 뛰어난 연기자였다.

6월3일까지.

(02)541-3150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