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창설 50주년] (4) 中기업 '쩌우추치' 거침없다
#1 이탈리아 섬유 산업의 중심지인 프라토.최근 이곳에선 파리와 밀라노 패션쇼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멋진 의류 제품들이 저가 중국산 제품처럼 싼 값에 팔려나가고 있다.

중국인 근로자가 프라토에서 만든 '메이드 인 이탈리아' 제품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프라토 인구 20만명 가운데 3만명 이상이 중국인 이민자다.

이들 가운데 2000여명은 자신의 힘으로 염색·제조 공장,무역 회사 등을 운영하고 있다.


#2 2004년 1월 24일.중국의 춘절(설)인 이날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인 샹젤리제 거리는 온통 붉은색의 오성홍기로 뒤덮였다.

에펠탑의 야간 조명도 붉은 빛으로 바꿔버렸다.

프랑스 정부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에 대한 예우와 함께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고려한 조치였다.

중국의 '쩌우추치'(走出去,달려서 밖으로 나간다) 전략이 아시아와 미국을 거쳐 유럽에 상륙했다.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원자재 확보를 위한 중국의 유럽 공략 바람은 한국보다 훨씬 거세다.

실제 중국의 최대 교역국은 이미 미국에서 유럽연합(EU)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EU의 대 중국 수입은 1916억유로로 대 미국 수입액 1762억유로를 앞질렀다.

유럽의 섬유산업은 이미 중국의 진출로 속수무책이 돼버린 상태다.

이규남 KOTRA 프라하 무역관장은 "체코 지역에서만 섬유 관련 기업이 매주 한 업체씩 무너지고 있다"며 "지난 주말에 만난 한 업체 사장도 중국 때문에 모든 게 끝났다며 망연자실해 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프랑스의 세계적인 유리그룹 생고뱅의 장 루이 베파 회장은 "최근의 국제 무역 환경은 첫째도,둘째도,셋째도 중국"이라고 말한 바 있다.

중국은 유럽의 인수·합병(M&A) 시장에서도 강자로 부상했다.

유럽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적 회계법인인 언스트앤드영은 2000년 이후 EU에 대한 중국의 투자 건수가 5배 이상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중국 TCL그룹이 2003년 말 대표적 가전그룹인 톰슨과 합작회사를 설립한 뒤 TV부문을 넘겨받았다.

TCL은 이듬해 4월엔 세계적 통신장비 업체인 알카텔과도 1억달러 규모의 합작회사를 설립해 휴대폰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홍콩의 최고 거부로 불리는 리자청은 프랑스의 향수 및 화장품 판매유통업체인 마리오노를 9억달러에 사들였다.

독일에선 기계산업의 핵심 중소기업을 넘겨받고 있다.

2004년 한 해에만 독일의 300여개 기업이 중국 손으로 넘어갔다.

당시 독일 언론들은 이 같은 중국의 기세를 '바이 저먼'이라 부르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독일 함부르크는 이미 350여개 중국 기업의 본산이 되었으며,이탈리아 시칠리아 내 중국계 기업은 1200개를 넘어섰다.

나이절 윌콕 언스트앤드영 투자컨설턴트는 "과거 일본처럼 중국의 대 유럽 투자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기업들의 이 같은 유럽 공략은 각국의 투자 유치 정책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중국에 투자 유치 사무소를 낸 국가는 영국밖에 없었지만 현재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중국에 투자 유치 사무소를 개설했다.

지난해 700명의 사절단을 이끌고 베이징을 방문한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는 "이탈리아를 중국을 위한 동방의 관문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에는 동유럽에 대한 중국의 관심도 높아가고 있다.

중국이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을 값싼 생산 기지로 활용,서유럽으로 가는 통로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