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마침내 '쌀'카드를 꺼내들었다.

22일 서울에서 열린 고위급 농업협상 폐막을 10분 정도 남겨둔 상황에서 리처드 크라우더 수석협상관이 "다음 주 열릴 장관급 협상에서 의제로 제기하겠다"며 불쑥 내던졌다.

민동석 농림부 통상정책관은 즉각 "유감"을 표명하며 "미국이 쌀 문제를 거론하면 협상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고 천명했으나 다음 주 열릴 장관급 협상에서 쌀시장 개방 문제가 협상 의제로 등장하는 것은 불가피해졌다.

관심의 초점은 '미국의 진짜 의도'다.

쌀 문제를 꺼내 든 것이 진짜로 한국 쌀시장 개방을 겨냥한 것인지,아니면 쌀 문제를 활용해 다른 분야에서 실리를 얻겠다는 협상 전략인지를 잘 구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황으로는 미국이 통상장관 회담에서 쌀 문제를 거론하려는 것은 쇠고기시장 재개방 등 다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협상 카드로 쓰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 근거로 한·미 FTA 협상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쌀 문제를 거론하지 않다가 '빅딜'을 위한 최종 장관급 협상을 앞두고 이 문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쌀시장 개방이 목표였다면 진작부터 이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협상단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협상을 깨려고 하지 않는다면 쌀처럼 민감한 품목의 시장개방을 고집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지난 14일 열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회의에서 "미국이 마지막 순간에는 쌀 문제를 언급할 수 있다고 본다"며 "여러 각료들이 수십 차례나 '쌀이 나오면 타결이 안 된다'고 밝힌 대로 우리 원칙은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2004년에 타결된 미·호주 FTA 협상에서 미국이 취약한 농산품인 설탕 등을 개방에서 제외한 사실도 쌀을 협상 의제에서 제외시키는 논거로 활용되고 있다.

일부에선 쌀 문제를 이른바 '빌트인'(built-in)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쌀이 관세화되는 2014년 이후에는 관세 철폐 문제를 재협상할 수 있다'는 식의 조항을 협정문에 삽입하는 형식으로 이번 협상에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은 2005년 세계무역기구(WTO) 재협상을 통해 미국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태국 등 4개국 쌀에 대해 2014년까지 의무 수입 물량을 늘리는 대신 관세화를 유예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현승윤/워싱턴=김현석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