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7층 회의실.연령별 소득별로 나눠 표본 추출된 10명의 여성 고객들이 원탁에 둘러 앉아 토론을 벌였다.

국민은행이 여성 전용 통장 개발을 위해 마련한 '포커스그룹 디스커션(FGD·표적집단 심층좌담)' 자리였다.

"주부들은 주로 다른 주부들과 모여 수다를 떨면서 정보를 교환합니다.

누가 어느 금융상품이 좋다고 하면 따라 가입하는 경우도 많고요.

한 사람이 다른 고객을 데려올 때 덤으로 금리를 준다면 입소문이 늘어날 겁니다.

소위 '수다 금리'를 주면 고객을 끌 수 있죠."

"요즘 여성들은 따로 가계부를 적는 대신 입출금 통장을 가계부 대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요.

매달 말 통장에 한 달간의 수입 지출 및 잔액을 결산해 주면 편할 것 같아요."

국민은행은 네 차례에 걸쳐 고객 심층 좌담을 벌였고 여기서 나온 의견을 상품 설계에 그대로 반영해 작년 9월 '명품 여성통장'을 선보였다.

명품 여성통장은 지금껏 2조3600억원(54만6000계좌)의 가입 실적을 올려 올해 국민은행의 최고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은행들의 상품 개발 방식이 바뀌고 있다.

은행원들의 '감(感)'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리서치와 시범테스트는 기본이고 고객이 직접 상품 설계에 참여하는 프로슈머(prosumer) 개념까지 도입하는 등 과학화되는 추세다.

우리은행은 지난 15일 급여통장인 '우리 로얄클럽 통장'을 출시하면서 처음으로 '파일럿 테스트(시범 테스트)'를 도입했다.

아파트 밀집 지역과 급여 이체자가 많은 지역 등 네 곳을 뽑아 한 달간 상품을 팔면서 고객들의 반응을 미리 점검했다.

이 결과 급여 이체 고객들이 제일 선호하는 혜택은 수수료 면제(61%)로 조사됐다.

이를 바탕으로 당초 자행 인터넷 및 모바일뱅킹에만 수수료 면제 혜택을 주도록 설계된 상품을 타행 간 이체수수료까지 면제해 주는 상품으로 바꿔 출시했다.

이 상품은 출시 3일 만에 4726계좌(금액 100억원)를 유치해 히트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상품 개발 경쟁력이 은행 경쟁력의 핵심 원천으로 떠오르면서 은행들은 상품 개발 조직 강화에도 발벗고 나섰다.

은행에도 R&D(연구개발) 바람이 불고 있는 양상이다.

국민은행은 올초 조직 개편을 단행하면서 수신 여신 투신 방카슈랑스 등의 상품 개발과 관리를 전담하는 상품본부를 신설했다.

신한은행도 R&D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 상품개발실과 신설된 마케팅R&D부서를 묶어 올초 마케팅전략본부로 개편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9월 상품과 서비스의 기획 및 개발 능력을 높이기 위해 연구개발팀을 신설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그동안 비슷한 상품을 갖고 금리 우대와 부가서비스 등으로 고객 유치 경쟁을 해 왔지만 앞으로는 갈수록 다양화·세분화하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상품을 제때 만들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며 "특히 향후 대출 수요 감소와 성장성 둔화가 예상됨에 따라 은행 전쟁의 성패는 상품 경쟁력에서 갈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