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1949년 초판)는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이 신혼여행에도 가지고 갔던 가치투자의 바이블이다. 나에게도 주식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면서 투자 세계에 입문할 당시 가치투자의 원칙과 철학을 일깨워주었고 혼란스러운 투자의 길목에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해준 고마운 책이다.

이 책을 접했을 때 든 첫 의문은 '도대체 어떤 투자자가 현명한 투자자인가?'였다. 그레이엄은 IQ나 높은 학력은 투자세계의 현명함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점은 책이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난 1988년 2명의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와 수학자,컴퓨터 과학자들이 운용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ong Term Capital Managemen)사가 파산하면서 전 금융시장을 뒤흔들 때 여실히 증명되었다.

투자자가 현명하다는 것은 참을성을 갖고 감을 제어하고,또한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레이엄은 어떤 투자대상이 아무리 그럴 듯해 보이더라도 결코 비싸게 사지 않는 것이 실수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보고,현명한 투자자는 부적절한 비관주의자(주식을 너무 싸게 만든다)에게서 사서 일시적인 낙관주의자(주식을 너무 비싸게 만든다)에게 파는 투자자라고 설파하고 있다.

"시장은 항상 변덕스럽다"라는 것만이 유일하게 일관된 법칙인 주식시장,오르막(ups)이 있으면 또 반드시 내리막(downs)이 있는 주식시장에서 투자 성공의 비밀은 투자자 내부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이번 개정판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최종 개정본에 미국의 저명한 투자 저널리스트인 제이슨 츠바이크(전 '포브스' 주필)의 생생하고 풍부한 시장 사례와 분석을 더했다. 원전 이해의 어려움을 호소하던 독자라면 츠바이크의 해석과 논평을 통해 세기를 뛰어넘는 투자의 원칙을 되새길 수 있을 듯하다. "건전한 투자의 원칙은 자주 변하지 않는다"는 그레이엄의 믿음이 논평을 통해 그 빛을 더하게 되었다.

장별로 새롭게 첨부된 최근의 미국 금융시장 상황은 그레이엄의 투자 철학이 처음 태동했던 1930년을 전후한 미국 대공황 당시와 무척 닮았다. 즉 미증유의 급등락을 보인 대공황 당시 엄청난 시세 변동 속에서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투자 원칙은 무엇인가'라는 고뇌에서 나온 그의 투자 원칙이 2000년대 정보기술(IT) 버블 붕괴를 경험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또 한번 입증된 셈이다.

특히 요즈음과 같이 투자와 투기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시장의 변덕이 극심한 투자환경에서 자칫 중심을 잃어버리기 쉬운 투자자에게 그는 투자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고 투자자의 기본자세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는 미래 예측에 대한 겸손과 인간학에 대한 깊은 철학적 인식이 바탕이 된 차원 높은 '현자'의 깨달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현명한 투자자는 주가가 상승하면 점점 위험해지고 주가가 하락하면 덜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적립식 펀드를 통한 중장기 가치투자자가 늘고 있는 지금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680쪽,3만2000원.

이만열 미래에셋증권 전략기획본부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