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盛日 < 서강대 경제대학원장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그동안 쉽지 않은 의제들을 놓고 FTA가 주는 장기적 상호이익과 국내에 미칠 단기적 이해관계 사이를 오가며 힘겨루기를 해온 양국 협상 당사자들의 노고를 우선 치하한다.

현 시점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문제는 두 가지다. 우선 기존의 FTA 협상절차에 따라 3월 말까지 협상을 타결할지 아니면 협상시한을 연장할지다. 국내 일부에서는 미국이 정한 시한이 일방적인 것이라고 비판하며 이에 구애받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이 자체적으로 FTA를 연장하지 않는 한 시한을 넘기게 되면 한·미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협상이 언제 끝날지도 모를 뿐 아니라 설사 타결이 되더라도 미국의회에서 일반법안과 같이 취급돼 세부내용을 수정,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비준 자체가 매우 불투명해진다. 따라서 정해진 FTA 시한 내에 타결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유리하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서로 어느 정도로 개방하는가 하는 수준의 문제이다. 원론적으로는 각 분야에서 예외없이 개방하는 '높은 수준'이 바람직하겠지만 양국의 현실상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분야가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중간 수준'의 개방으로 가는 것 같다. 벌써 한국의 쌀 시장 유지와 미국의 연안운송 자국선박이용(존스액트)을 서로 양해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머지 이슈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내용있는 FTA가 될 수도 있고 포장만의 FTA가 될 수도 있다.

개방협상은 국내의 이해관계 충돌을 무릅쓰고 장기적 상호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국내 이해당사자들을 지나치게 의식해 뜨거운 감자를 버리는 식으로 협상을 타결하면 명분과 실리도 다같이 버리는 것이다. 뜨거운 감자를 버리지 말고 쪼개거나 식히는 식으로 처리하면서 상호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협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점에서 특히 미국의 대승적 자세변화가 요청된다. 미국은 그동안 명실상부하게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경제를 가지고 그 혜택을 보면서 다른 나라에 이를 홍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협상에서 보이는 자세를 보면 미국이 과연 글로벌 개방경제를 지향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反)덤핑제도다. 미국의 반덤핑제도는 경제논리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업계의 이익만을 위해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등 매우 후진적이다. 미국은 그렇게 보호해준 철강 전자 등 자국기업들이 오히려 국가경쟁력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전문직 비자확대도 마찬가지다. 과학교사,수학교사,엔지니어 등 전문직 확대는 미국 내에서 현재 수요도 높을 뿐 아니라 미래의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소관사항이 아니라고 회피한다면 얄팍한 협상전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미국은 반덤핑제도를 완화하는 법 개정을 하고 당장 가능한 행정규제부터 철폐하기 바란다. 그리고 전문직 비자 설정과 함께 서비스 자격 상호인정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도 이에 상응하는 자세 전환이 필요하다. 자동차에 대한 더 이상의 보호정책은 국내 자동차산업의 미래 경쟁력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농축산물 분야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과보호하는 나라다. 뼈조각도 아닌 뼈부스러기를 가지고 시비하지 말고 미국산 쇠고기를 호주산과 같이 경쟁하게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 가격을 낮춰야 한다. 가전제품 개방 및 한·칠레 FTA의 경험이 보여주듯 한국기업과 한국인은 개방을 통해 더 강해졌다. 무엇이 두려운가.

내용 있는 수준의 한·미 FTA는 두 나라를 동북아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로 격상시킬 것이다. 미국은 고도성장하는 동북아시아 경제권에 동참하는 파트너가 되면서 중국 일본에 대해 강화된 교섭력을 가질 것이다. 한국은 한미 FTA를 한·일,한·중 FTA로 연결시키면 동아시아 FTA의 허브로서 막강한 힘을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