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금융전문가들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꼽아왔으나,정작 시장에서는 낙관적인 대세론에 파묻혀 있던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금융시장의 대혼란' 가능성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지난주 초 120엔대에서 움직였던 엔·달러 환율이 중국 증시의 대폭락 이후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115엔대로 하락했고,추가적인 엔화 환율 하락(가치절상)을 우려한 투자자들의 환매로 5일 한국과 일본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주가가 급락하고 원화 환율은 급등했다.

여기에다 미국 경제의 둔화 가능성과 주택시장 침체에 따른 금융부실 가능성,중국 정부의 긴축정책으로 주식과 외환 등 금융시장은 한치 앞을 내다 보기 어려운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엔캐리트레이드 청산 우려

금리가 낮은 일본 돈을 빌려다가 전 세계에 투자하는 엔캐리트레이드 관행은 처음에는 헤지펀드에서 시작됐으나 최근 들어서는 뮤추얼펀드와 개인 등이 애용해 왔다.

환율에 변화가 없다면 예컨대 2%의 엔화자금을 빌려 5%의 수익으로 운용하면 3%포인트의 차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만 해도 국민 우리 신한 하나 기업 외환 등 6개 은행의 엔화 대출 규모는 2월 말 기준 1조2143억엔으로 이 중 상당수가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전 세계에 투자된 엔화 자금은 1조달러 안팎으로 추정된다.

시장에서는 최근 일본 엔화 금리가 오르면서 엔캐리트레이드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엔화의 환율 하락 가능성마저 높아지면서 엔캐리트레이드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1주일 만에 엔·달러 환율이 6엔 이상 떨어지고 원·엔 환율이 50원 이상 오른 것을 그 증거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위험자산 회피 확산 우려

문제는 엔캐리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국제적인 자금 이동이 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엔캐리트레이드 자금의 이탈은 헤지펀드뿐만 아니라 뮤추얼펀드 등 중장기 기관투자가들의 매도마저 부추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5일 아시아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하고 원화 환율이 급등한 것은 엔캐리트레이드 자금이 일부 빠져나간 데다 중장기 기관투자가들마저 비관론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의 성장 둔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도 국제 금융시장에 위험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미국의 경제 성장이 둔화될 수 있다"고 발언한 이후 실제로 미국의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주식을 팔아치우고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 등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동성은 커질 듯

국제금융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국제 금융시장이 파국으로 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아직까지는 전 세계적인 주가가 여전히 높기 때문에 주가 폭락에 따른 충격이 그리 크지는 않고,미국과 유럽연합 등이 엔캐리트레이드의 급격한 청산을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여전히 우세하기 때문이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998년 롱텀캐피털(LTCM)사태 이후 엔캐리트레이드 청산 사례를 고려할 때 단기간에 10% 정도는 엔화가 절상돼야 청산이 이뤄진다"며 "최근 엔화가치가 반등한 것을 두고 엔캐리트레이드 자금의 청산을 논하는 건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 금융시장이 안정세를 되찾더라도 위험(변동성)은 지속적으로 커져갈 것이라는 우려 역시 적지 않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아직은 유동성이 풍부해 급격하게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겠지만 시장이 안정되더라도 한 나라에서 발생한 충격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불안을 만들 위험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