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은 사상최고치란 단어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유가증권시장의 코스피 지수가 사상최고치를 뚫은 지난 22일 만난 한 증권사 관계자의 푸념이다. 증권가에선 코스닥 사상최고치에 대한 기대감이 말라 버린지 오래다. 다시는 넘기 힘든 산으로 보는 분위기다. 코스닥 지수는 2000년 3월10일 2834.40으로 최고점을 찍었다. 27일 코스닥지수(611.52)는 사상최고치의 21.57%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코스닥이 출범한 96년 7월1일(1000)보다 낮다.

코스닥 시장이 내리막길을 걸은 것은 기업들의 신사업에 대한 공수표 남발과 묻지마 투자가 만들어낸 거품이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서 붕괴된 탓이 크다. 문제는 지금도 시장의 신뢰를 갉아먹는 부정이 여전히 판치고 있다는데 있다. 얼마 전 만난 증권선물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고위관계자는 "업무량의 70%가 코스닥에 몰려있다"고 전했다.

대표이사의 횡령과 배임사건이 툭하면 터지고,최대주주가 소리없이 지분을 처분해 무주공산이 된 기업까지 등장하는가하면,연예인 등 유명인을 상대로 증자를 한다고 공수표를 날리거나 사채업자에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린 뒤 공모해 주가를 띄우는 일부 기업들의 잘못된 관행 때문이다. 코스닥시장에서 횡령 배임건수는 지난 2005년 17건에서 지난해 21건으로 늘었고 올들어서도 2개월도 채 안돼 벌써 7건에 이른다. 잦은 공시번복도 문제다. 코스닥공시정보 정정비율은 지난해 15.2%로 유가증권시장(7.7%)에 비해 2배 수준이다.

일부 부실기업이 코스닥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정상적인 기업들마저 제 값을 못 받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코스닥의 우량기업들로 구성된 스타지수 구성종목을 기준으로 한 주가수익비율(PER)은 24.4배 수준으로 미국의 나스닥이나 일본의 자스닥에 비해 67% 수준에 머물러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실을 극복하려면 악화를 구축해야한다. 코스닥 진입과 함께 퇴출이 활발해져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기업들도 감자 등 온갖 수단을 통해 퇴출을 회피하는게 현실이다. 거래소가 급기야 횡령 발생 등 부실징후 기업에 대해 특별관리를 하겠다고 발표까지 하고 나섰지만 실효성은 의문시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당국이 문제업체를 검찰에 고발해도 법원으로 넘어가면 솜방망이처벌로 끝나는게 허다하다"며 "증권사범의 인권도 존중해야한다고 하지만 그로 인해 가정까지 파탄나는 투자자들의 인권보호는 어떡해야하냐"고 반문한다. 일벌백계로 자본시장에서 영구퇴출시키는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거래소가 바이오기업들의 거품이 위험수위에 달했다는 신호를 시장에 내보내자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거래소 여직원은 눈물까지 흘릴만큼 폭언을 들어야했다. 매도의견을 내놓는 애널리스트가 일손을 잡기 힘들만큼 해당 기업은 물론 투자자들로부터 시달리는 현실도 극복돼야한다.

유가증권시장의 최고치 경신은 코스닥에 해묵은 숙제를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기업 관계당국 투자자 모두가 풀어야할 숙제다.

오광진 증권부차장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