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경영체제로 회귀 vs 글로벌 경영 구축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이 두산중공업 등기이사로 내정됨에 따라 가시화되고 있는 두산 오너가 형제들의 경영체제에 대해 그룹 내외부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두산그룹은 다음달 열릴 주주총회에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을 두산중공업 등기이사로,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을 두산중공업과 ㈜두산 등기이사로 각각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라고 22일 밝혔다.

박용성 전 회장은 사면 이후 "대주주로서 권한과 책임을 다하겠다"며 두산중공업 이사회 의장직 수행의사를 피력한 바 있어 주총을 통해 이사로 등재되면 조만간 의장직으로 선출될 전망이다.

또 최근 두산중공업의 베트남 현지 공장 착공식에 참석하고 한국-스페인 경제협력위원장 자격으로 노무현 대통령 유럽 순방에 동행하는 등 계열사 부회장을 넘어선 경영활동을 펼쳤던 박 부회장은 이번 등기이사 내정으로 '그룹 경영'의 행보가 한층 가벼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그동안 그룹경영에 참가하지 않았던 고(故) 박두병 초대회장의 4남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이 최근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돼 향후 두산그룹을 대표해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부회장직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형제의 난'을 촉발시켰던 박용오(2남) 전 회장만 배제되고, 맏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을 수장으로 박용성(3남), 용현(4남), 용만(5남) 오너 3세 형제들이 ㈜두산,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산업개발 등 두산의 주요 계열사를 직간접적으로 경영하는 구도가 완성된 셈이다.

◇"성급한 복귀..오너 지배체제 강화" = 횡령 및 분식회계 관여 혐의를 실형을 선고받은 박용성 전 회장이 사면된 지 1개월도 안돼 경영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지자 시민단체 등 두산그룹 외부 일각에서는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좋은기업지배연구소 김선웅 소장은 "분식회계나 횡령은 기업경영자로서 치명적인 약점"이라며 "사면으로 범죄에 대한 형이 소멸했을지 몰라도 주주들이나 시장에 대한 책임을 다 진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박 전 회장은 백의종군해 회사에 기여하고 그에 대한 재평가를 받고 나서 그룹경영에 복귀해도 늦지 않다"며 "이번의 이사 내정은 오너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형제의 난 이후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며 회장직에서 사퇴한 박 전 회장이 사면을 받은 뒤 '책임'경영을 표방하며 복귀에 나선 것은 박 전 회장의 사퇴가 사법처리를 앞둔 '기만적 술책'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주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박 전 회장의 발언에 대해 "박 전 회장을 비롯한 두산의 지배주주 일가 전체 지분율이 3.24%에 불과해 '대주주'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으며 부실경영 책임자가 그 직위에서 물러나는 것이 책임경영의 요체"라고 반박한 뒤 "박 전 회장의 이사회 선임을 저지하기 위해 주총에 참여할 지 여부를 조만간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주주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꼭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굳이 대주주로서 활동하겠다면 주총 등을 통해 전문경영인의 경영활동을 견제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영과 지배구조 개선 가속화" = 두산은 박 전 회장 등의 이사 등재가 글로벌 경영과 지주회사로 전환을 위한 것이지 '오너 체제로의 복귀'가 아니라고 못박고 있다.

두산의 고위 임원은 "두산은 외부이사가 절반 이상으로 구성된 이사회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계열사 경영은 전문경영인들이 맡아서 할 것"이라며 "박 전 회장은 대주주로서 책임을 지기 위해 등기이사로 선임되는 것으로, 앞으로 이사로서 두산의 글로벌 경영이라는 큰 밑그림을 그리는데만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마쓰이밥콕 등 굵직한 해외 기업을 인수합병(M&A)한데 이어 올해도 M&A 등 해외 투자에 6천억원을 쏟아 부을 예정인 두산은 글로벌 경영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국제상공회의소 회장직 등을 수행한 박 전 회장의 세계적인 재계 인맥이 필요하다는 것.
또 '형제의 난'으로 박 전 회장 등이 사퇴하면서 공표했던 투명경영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로드맵'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오너인 박용만 부회장이 ㈜두산의 이사로 참여해 내년 말까지 ㈜두산이 지주회사 전환하는데 필요한 '결단'이 요구된다는 것이 두산 측의 설명이다.

두산 관계자는 "박 전 회장 등의 경영복귀가 형식상으로 '형제의 난'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두산의 지배구조가 그동안 많이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예정이기 때문에 내용상 기존의 '오너경영'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pseudoj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