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향후 13년간 115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시중 자금을 끌어 쓰겠다고 나선 것은 궁여지책이다.

해야 할 공공투자 사업은 많은데 당장 돈이 없으니 우선 급한 대로 남의 돈(민간 자금)을 쓰고 나중에 갚아 나가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다 보니 '국채수익률+α' 수익률 보장,펀드 원금 보장 등의 갖가지 혜택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부 재정 부담을 늘리고 투자상품 본연의 성격을 정부가 앞장서 파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민간 자금이 공공 재원으로 쓰이다 보면 정작 민간의 투자 재원은 말라 버리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시중 자금에 왜 눈독 들이나

한 마디로 현재 재정 여력이 부족해서다.

참여정부 들어 각종 사회복지 사업 등에 돈을 쏟아붓다 보니 정부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적자 국채 발행 규모는 2002년 말 133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283조5000억원으로 150조원이나 늘었다.

정부의 관리대상 수지도 2004년 적자로 돌아선 이후 지난해엔 적자 규모가 14조9000억원으로 불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도 "공공 사업은 국채를 발행하거나 세수로 하는 것이 원론적으로 맞지만 현재 여의치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때문에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시절 기획된 BTL(임대형 민자사업·Build-Transfer-Lease) 방식이 임대주택 펀드 등에도 활용되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2013년까지 총 16조원의 해외자원개발 투자 필요액 중 10%에 해당하는 1조6000억원을 민간자본 유치 펀드 방식으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각종 혜택도 마다하지 않아

시중 자금도 각기 용도가 정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MMF(머니마켓펀드)나 MMDA(수시입출금식예금) 등 단기 자금은 기업체 등의 기간 불일치에 따른 예치용 성격이 강하다.

국민연금이나 우체국 등은 나중에 가입자에게 적정 이윤을 돌려줘야 한다.

때문에 정부가 이 자금을 쓰기 위해선 상당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BTL과 임대주택 펀드엔 국채 수익률에 1%포인트 안팎의 수익률을 얹어 주고 있거나 계획 중이다.

정부가 이 같은 수익률을 보장하기 때문에 원금 손실 위험도 없다.

유전 펀드의 경우 정부가 '사실상'의 보험 기금을 만들어 원금 손실을 보전해 주고 있다.

정부는 현재 100억원을 투입해 놓고 있으며 향후 늘려나갈 예정이다.

이 같은 위험보장 혜택은 향후 광물 펀드 등에도 그대로 적용될 전망이다.

◆부작용은 없나

BTL과 임대주택 펀드엔 '국채수익률+α'의 수익률을 보장하기 때문에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사업하는 것보다 α만큼의 이자를 더 줘야 한다.

현재 α가 1%포인트 정도이기 때문에 임대주택펀드 90조원의 경우 정부가 이자로 1년에 9000억원을 추가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이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은 "α만큼의 추가 지급액을 만회하려면 공공 부문이 직접 사업하는 것보다 효율성이 높아야 한다"며 "정부가 이를 위해 얼마나 제도적 장치를 갖추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투자 상품의 성격 왜곡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원래 유전 펀드나 광물 펀드의 경우 '고위험·고수익' 추구형 투자 상품이다.

원본에 손실이 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가 여기에다 재정을 투입,보험의 방식으로 손실을 보장해 주면 투자상품 본연의 성격이 파괴되는 것이다.

투자자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얘기다.

석유공사는 향후 장기간 '캐시카우' 역할을 할 수 있는 베트남 15-1광구 지분을 1호 유전펀드에다 넘긴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석유공사 일각에선 차라리 소유권을 갖고 있으면서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보다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시중 자금에 자꾸 손을 뻗치다 보면 민간부문 투자자금 이탈 문제와 증시의 자금중개시장 기능 위축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