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2일 오후 정세균(丁世均) 의장 등 열린우리당 새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탈당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해 300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정국에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탈당하면 우리당은 여당 지위를 잃게 되면서 법률적으로 여당과 야당이 따로 없는 상황이 초래돼 당정관계와 국회운영 틀의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또 우리당과 탈당파, 민주당 등 범여권의 통합신당 추진 움직임도 노 대통령의 탈당을 계기로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아 대선구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저녁 청와대에서 가진 우리당 지도부 초청 만찬에서 "대통령의 당적 문제와 관련해 우리당내에 찬반양론이 있어 망설임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당내에 일부라도 대통령의 당적 정리 주장이 있는 이상 당내 갈등의 소지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고 청와대 대변인인 윤승용(尹勝容) 홍보수석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전직 대통령들이 임기말에 당적 정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정치의 구조적 문제, 잘못된 정치풍토를 결국 극복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탈당 의사 표명과 함께 사의를 밝힌 한명숙(韓明淑) 총리를 포함한 일부 정치인 출신 각료에 대한 개각 및 청와대 비서진 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며 개헌 추진과 민생 현안, 개혁 과제에 전념하는 쪽으로 국정 운영의 방향을 전환할 전망이다.

노 대통령은 우리당 탈당 절차를 밟은 직후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안을 발의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위치에서 사회적인 담론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친노(親盧) 직계인 이화영(李華泳) 의원은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노 대통령이 굉장히 자유로워질 것"이라며 "`정치인 노무현'으로 돌아가서 최근 진보진영과의 논쟁에서 보듯이 사회적 담론의 의제를 설정하면서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에 대해 발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 대통령이 탈당하면 우리당은 `여당 프리미엄'을 상실하고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부담을 안는 대신, 노 대통령과의 연계로 인해 초래됐던 `여당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 통합신당 추진 등 정계개편에 한층 속도를 낼 수 있게 됐고, 추가 탈당을 막는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한 총리가 당에 복귀해 대선행보에 나서고 외부에서 거론되는 대권 예비주자들의 영입도 성과를 거둘 경우 범여권의 대권경쟁 구도는 지금보다 한층 복잡해질 전망이다.

우상호(禹相虎) 의원은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를 극복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야 하는 여당 입장에서는 노 대통령의 탈당이 나름대로 도움이 되고 과거와의 단절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탈당이 오래전부터 예고돼온 수순인 데다 한나라당 대선주자간의 검증공방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이어서 정치적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정장선(鄭長善) 의원은 "대통령의 탈당은 이미 다 반영된 내용이어서 정치 일정에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결국 문제는 대통합신당 추진에 있어서 성과 여부이고 그 부분이 지지부진하게 가다가 성과가 없으면 당이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통합신당모임 등 탈당파 의원들 사이에서는 통합신당 추진 경쟁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기대와 문서행위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하는 시각이 교차했다.

신당모임 전병헌(田炳憲) 의원은 "과연 우리당이 대통령의 그림자를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통합 추진을 놓고 신당모임과 우리당의 선의의 경쟁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고, 장경수(張炅秀) 의원은 "노 대통령의 탈당은 문서행위에 지나지 않으며 탈당 후에도 배후에서 여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한나라당은 법률적 여당이 사라져 원내 제 1당으로서 정국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됐으나 동시에 국정운영의 책임을 나눠져야 하는 부담을 함께 안게 됐고 `노 대통령+여당'이라는 타깃이 변화한 상황에서 대선정국 운영 기조의 수정도 불가피하게 됐다.

유기준(兪奇濬) 대변인은 "민생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정권재창출에만 전념하겠다는 대국민 협박이고 국정실패 책임을 야당에게 떠넘기면서 통합신당의 길을 터주려는 기획탈당"이라며 대통령의 탈당의사 철회를 촉구했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