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뒤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자신있게 얘기하는 사람이 예전에는 참 많았다. 고향에 목장을 짓고 조용히 살겠다는 이도 있었고 부부가 세계 여행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사람도 적지 않았다. 성공한 사람 가운데는 '자원봉사나' 하면서 살겠다는 인사들도 꽤 됐다.

요즘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아직 먼 일'일 뿐이다. 은퇴 이후의 삶이 아직 걱정할 일도 아니고 걱정해도 답이 안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멋지게 늙어가며 인생을 즐기는 '로맨스 실버'는 우리 사회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성공한 사람들조차 끝나지 않는 자식들 뒷바라지 때문에 예순이 넘으면 결국 '점퍼'와 '몸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먼일로 여겨졌던 은퇴 이후의 '자기경영'이 이제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들의 은퇴가 시작되면서다. 베이비 부머들은 그 '숫자'가 많은 탓에 이들의 변화가 우리 사회에서 한 획을 긋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는 너무나 건강한 이들이 은퇴자가 되기 시작하면서 '포스트 직장', 즉 직장 이후의 삶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우리의 준비는 아직까지는 전무(全無)라고 봐도 좋다. 엊그제 삼성금융연구소가 내놓은 설문조사를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은퇴 희망 연령이 대부분(45%) 56∼60세였고 '65세 이상'은 9%에 불과했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도 53%나 됐다.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균 수명 100세 시대를 살게 될 것이라는 게 미래학자들의 전망이고 보면 '60세 은퇴 희망'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판단이다. 실제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68세까지 일하고 있는 것이 현실(노동연구원)이다. 준비는 안돼있는데 일도 하기 싫은 상태라면 은퇴 이후의 삶은 그야말로 무대책인 것이다.

베이비 부머들이 직장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 분위기는 분명히 바뀔 것이다. 이제 목표를 갖고 은퇴 이후를 경영하지 않으면 글자 그대로 거리에 나앉게 되는 사례들이 속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버 세대의 자기 경영도 그 골자는 다를 바 없다. 비전을 명확히 세우고 그에 따른 중장기 액션플랜을 다듬고 매일매일 노력하는 것이다. 70세에는 무엇을 하고, 80세에는 어디를 가고, 90 무렵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를 그려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 인데도 "벌써 예순인데…"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전문가들은 전혀 다른 2막을 조언한다. 서울에서 근무했으면 은퇴 후에는 지방으로,기업에서 근무했으면 사회봉사 단체로,기업에서 계속 근무하고 싶으면 전혀 다른 업종으로 옮겨가라는 조언이다. 이 경우 급여나 보수는 기대치를 낮춰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산업화 시대를 버텨온 좌뇌적 패러다임을 벗고 우뇌 시대로 전환하는 훈련도 필요하다. '새로운 미래가 온다'의 저자 다니엘 핑크의 조언대로 감성적 하이터치의 우뇌적 패러다임을 새로 연습해야 한다.

가족들도 할 일이 있다. 설날 한자리에 모일 때 '봉양'을 의논 할게 아니라 부모들의 '경영계획'을 여쭙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그만 쉬지죠"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마시길.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