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서 숙제를 잘 해주기 바란다.기다려 보겠다"


지난달 19일 서울에서 열렸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6차 협상이 끝난 뒤 브리핑에서 김종훈 수석대표가 "새롭고 강렬한 분위기가 있었다"는 웬디 커틀러 미국 대표의 언급에 대한 화답으로 내놓은 말이다.

비유적 표현이기는 하지만 양측 수석대표간 모종의 절충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말이어서 커틀러 대표가 들고올 '숙제 풀이'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 '숙제'는 뭘까

커틀러 대표가 김종훈 대표로부터 받아간 '숙제'의 정체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김 대표가 6차 협상에서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채 "'가정을 전제로 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시인한 데서 보듯, 핵심 쟁점을 둘러싸고 양측이 '빅딜'의 정지작업을 시작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두 대표는 협상을 매끄럽게 풀기 위한 수순으로 서로 민감해하는 문제들, 특히 '대내협상'의 원만한 진행을 위한 어젠다를 교환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해당되는 항목이라면 우리측에서는 반덤핑(무역구제), 투자자-국가소송(ISD)과 관련된 간접수용의 범위문제, 금융위기시 단기 세이프가드나 국책은행의 협정적용 문제가 남은 금융, 전문직 비자쿼터나 방송,통신시장 개방이 걸린 서비스 분야 , 원산지 협상에서 개성공단 등이 꼽힌다.

미국측에서는 쇠고기 문제를 예외로 하더라도 강한 정치적 압력을 받고 있는 자동차 문제와 다국적 제약사들의 집요한 로비에 노출돼있는 의약품 등이 우선 대상으로 거론된다.

이런 항목들을 놓고 하나를 주면 상대방이 어느 정도까지 해당 분과와 다른 분과에서 양보가 가능한 지를 타진해보는 가상 시나리오의 검토가 '숙제'의 중요한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

◇ 양보할 것 찾기

이런 가운데 정부는 7차 협상 개막 전부터 '양보'로 비춰질 수 있는 발언들을 속속 쏟아내며 타협 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다.

김종훈 수석대표가 지난 7일 의약품의 특허 출원 뒤 심사기간 만큼 특허보호기간을 실질적으로 연장해달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양측간에 합의가 되면 특허기간을 그만큼 붙여줄 것"이라고 발언했고, 같은 날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은 "배기량 기준 자동차 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중"이라고 언급했다.

정부 관계자들이 이런 발언을 연이어 내놓는 데 대해 "협상 개막전에 '선물'을 풀어 협상력을 떨어 뜨린다"는 비판론도 제기되지만 우리가 '성의'를 보일테니 미국도 반덤핑과 자동차 관세양허 등에서 전향적 자세를 보여달라는 공개 압박의 성격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역구제와 차,의약품을 연계해 얻어내겠다는 우리 협상단의 7차 협상 기본전략과 맥이 닿아있는 것으로 만약 이런 형태의 '빅딜'이 성사된다면 협상 자체는 급물살을 타면서 '3월말 타결'이라는 양국 정부 목표에 다가서게 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낙관론'에 불과하다.

미국측이 한국 업계의 핵심적 이해가 달린 무역구제에서 법 개정없이도 가능한 1∼2개 항목만을 수용하겠다거나 간접수용, 금융 단기 세이프가드 등 민감한 항목에서 '성의없는 숙제'만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그 대가를 요구한다면 상황은 다시 꼬일 수밖에 없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수 기자 jski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