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출범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차기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를 받은 강신호 회장이 아들과의 경영권 분쟁과 전경련 내부의 비판적인 목소리 등에 떠밀려 연임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더욱이 강 회장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대부분의 인사들이 개인 사정 등을 이유로 한결같이 고사하고 있어 그동안 '재계의 구심점'을 자처해왔던 전경련의 위상은 땅바닥에 떨어지게 됐다.

이에 따라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활발하게 경제계의 의견을 전달해야 할 전경련이 과연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겠느냐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나마 후임 회장 추대작업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충격을 덜 수 있겠지만 향후 전망은 완전히 안개 속이다.

현재로서는 선뜻 회장직을 이어 받을 총수가 눈에 띄지 않는다.

대부분의 총수들이 정치권 및 정부와의 관계 등을 의식해 '괜히 나서서 총대를 메지 않겠다'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또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한 4대 그룹 총수도 전경련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데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마저 지난 1일 전경련 부회장직을 사퇴한 마당에 누가 순순히 회장직을 수락하겠느냐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전경련은 내주 회장단 회의를 통해 추대위원회를 구성하고 9일로 예정됐던 총회를 2주 후로 연기해 차기 회장을 선출한다는 방침이지만 수장이 없는 공백 상태가 훨씬 길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 조건호 상근 부회장은 "일단 총회 전까지는 강 회장이 회장직을 유지하게 되며 총회 때 또다시 회장 선출에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경련의 정관에 따르면 추대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누구도 차기 회장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 경우 차기 회장직은 연장자 규정에 따라 조석래 효성 회장(72)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조 회장 스스로 회장직 수락을 고사하고 있는 상황이고 다른 총수들이 흔쾌히 동의해 줄지도 미지수다.

가장 무난한 인물로 평가되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지난해 대우건설 인수를 계기로 사세를 급속하게 확장하면서 전경련 회장직 수행에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때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김승연 한화 회장 역시 최근 사업에 전념한다는 이유로 전경련에 발길을 끊은 상태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