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가치 약세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헤지펀드들의 '엔캐리 트레이드'(이자가 낮은 엔화 자금을 빌려 외국의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것)가 일순간에 해소될 경우 국제 금융시장에 커다란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 바클레이스 캐피털의 자료를 인용,엔캐리 트레이드를 비롯한 캐리 트레이드 규모가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340억달러(1998년 불변가격 기준)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캐리 트레이드에는 엔화뿐 아니라 스위스 프랑 등 다른 통화도 이용되는 데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것도 많아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힘들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캐리 트레이드 규모가 현재 달러가치 기준으로 2000억달러에서 많게는 1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집행이사 말콤 나이트는 지난주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과잉 상태인 캐리 트레이드가 일시에 해소될 경우 금융 및 외환시장에 급격한 가격 조정의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엔캐리 트레이드가 기승을 부리던 1998년 엔화가치는 달러당 147엔까지 떨어졌으나(엔캐리트레이드가 활발하면 엔화 공급이 늘어 엔화가치가 떨어짐) 러시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 후 두달여 만에 112엔까지 치솟았다.

세계 금융시장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고 그 여파로 당시 세계 최대 헤지펀드이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가 결국 문을 닫았다.

FT는 일본 경제의 회복세가 본격화되고 있는 데다 일본은행이 올해 중 추가로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하면 엔캐리 트레이드가 일순간 역전, 대규모 청산(차입한 엔화 상환)이 진행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주 국제 외환시장에서 엔화 매도 포지션(규모)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외환시장이 엔화 약세 일변도로 몰리고 있어 시장 급반전에 따른 파장이 우려되고 있다.

엔캐리 트레이드와 엔화 매도 포지션의 급증으로 엔화가치는 29일 4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날 엔화가치는 한때 달러당 122.19엔까지 떨어졌고 유로에 대해서도 유로당 158.60엔까지 하락했다.

엔화가치는 30일에는 소폭 반등했으나 여전히 달러당 121엔 후반에 거래됐다.

유로화를 쓰는 유로존 13개국 재무장관들도 엔화 약세에 우려를 표명,내달 열리는 G7(선진 7개국) 재무장관 회담에서 이 문제를 공식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 겸 재무장관은 29일 브뤼셀에서 유로존 재무장관 회담을 마친 후 "엔화 약세에 대한 유로권의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페어 슈타인브뤽 독일 재무장관도 G7 재무장관 회담에서 엔화 약세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도록 참석국가들을 설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엔화 약세로 유로존의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가 지난해 17%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김선태 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