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도 기다리지 않고

무엇에도 사로잡히지 않은 채

홀로 하루를 보낸다

설렘 없이 울렁증 없이 슬픔 없이

그저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 뿐이다

그런 마음이다

견디는 바 없이 보내는

이런 드문 하루는

가볍고 가볍다

(…)

아침이었는데 벌써 저녁이다

하루살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강기원 '어떤 하루'부분


기다림도 설렘도 없고,울렁증이나 슬픔도 없다면 그게 바로 득도(得道)의 경지 아닌가.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온갖 번뇌에 시달리는 우리에게도 아주 가끔 그 비슷한 때가 찾아온다.

모든 집착에서 놓여나는 순간이다.

집착이 삶을 이끌고 지탱하는 동력이긴 하지만 처치곤란일 때가 많다.

무엇에 집착할 땐 그것을 볼 수도 알아차릴 수도 없다.

세월이 흘러 먼 과거가 됐을 때라야 뚜렷하게 보인다.

깃털처럼 가볍게,유람하듯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