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정도 일하다 퇴직하면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죠.연금에는 세금 한 푼 붙지 않아요.혜택은 배우자에게도 돌아갑니다.돈이 이렇게 낭비되는 데도 50명이 넘는 부사장급 임원들은 자신들의 임기를 채우는 것에만 급급하죠.회사가 버텨낼 수 있겠어요."

디트로이트 한인회 회장 이종효씨가 전해준 포드자동차의 실상이다.

이 회장은 28년간 포드에서 하이브리드카(휘발유·전기 혼용차) 담당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했다.

그는 "외국차들의 공세가 거세진 상황에서 미국 빅3 업체는 아직도 안일한 경영에 빠져 있어 옛날의 명성을 되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 '빅3'는 그동안 '신이 내린 직장'으로 통했다.

미국의 어느 회사도 이들만큼 좋은 혜택을 근로자들에게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빅3' 말고는 퇴직자들에게 평생 연금과 의료비를 대주는 회사는 없다.

해고 직원들에게 95%의 임금을 주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연간 5만달러 이상의 급여를 지급하는 인력은행(Jobs Bank) 제도도 GM에서만 볼 수 있다.

GM에 근무하다 외국계 자동차부품 업체로 옮긴 마이클 피버씨는 "빅3를 제외한 다른 회사들은 퇴직시 통상 3~6개월치의 월급만 퇴직금으로 준다"며 "퇴직 후 연금을 받으려면 근로자들이 재직시 매달 일정액을 적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GM은 1998년 상급 단체인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주도하는 교섭을 통해 의료비 지원 등 노조안을 대부분 수용했다.

구조조정이나 공장 해외 이전 등에 대해 반드시 노조의 동의를 거치도록 허용했다.

신규 투자나 연구개발에도 노조 의견을 반영토록 하는 등 경영권을 대폭 공유했다.

현대차 노사도 같은 내용의 단체협약을 맺고 있다.

그러나 회사가 망가지면서 '빅3'의 노조원들은 구조조정과 실직이라는 부메랑을 얻어맞고 있다.

GM은 내년까지 북미 공장 12곳을 폐쇄하고 생산직 근로자 3만명을 감축하기로 했다.

포드도 오는 2012년까지 공장 14곳의 문을 닫고 생산직 3만8000명을 정리해고할 계획이다.

다임러크라이슬러도 다음 달까지 구조조정안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빅3'의 추락은 미시간 지역의 한인 자영업자들에게도 직격탄을 날렸다.

엄성철 KOTRA 디트로이트 무역관장은 "실직자가 급증하면서 한인 소매상들의 매출이 3분의 1로 급감했다"고 전했다.

미시간주 트로이시의 미용실에서 일하는 홍인자씨는 "미시간주에서만 18년간 일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손님이 많이 줄어든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트로이 인근의 스털링 하이츠시에서 한국음식점을 경영하는 고원일씨는 "가게를 연 지 2년6개월 정도 됐는데 지금처럼 힘든 때는 없었다"면서 "상당수 한인들이 조지아 등 미국 남부로 떠나갔다"고 말했다.

현지 부동산업체 관계자는 "작년 이후에만 미시간에서 2만여명이 남부로 빠져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초강성 노조도 점차 설자리를 잃고 있다.

과도한 임금 및 복지 요구가 결국 자신들의 목을 죄는 올가미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있다.

작년 6월에는 UAW의 론 게텔핑거 위원장이 노조원 3만5000여명 감축안을 수용하면서 "미국 자동차산업이 존속하려면 노조가 구태의연한 모습을 버리고 공생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오하이오주의 다임러크라이슬러 톨레도 공장에서 만난 테드 로버츠 관리부장은 달라진 노사 관계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는 "노사가 올해 예정된 임금 및 단체협상을 미루고 오는 2011년까지는 협상을 하지 않기로 하는 등 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관련 전문 연구기관인 '카'(CAR·미시간주 앤 아버시)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버나드 스웨스키씨는 "공장 폐쇄와 대량 해고가 현실화하는 등 빅3의 경영환경이 극도로 어려운 상황인 만큼 이제는 UAW가 변해야 할 차례"라고 지적했다.

디트로이트에는 과거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한 채 잊혀져 가고 있는 공장들이 많다.

포드가 대량생산 방식을 적용한 첫 차량(모델T)을 양산했던 하이랜드파크 공장과 럭셔리차를 만들었던 패커드 공장 등이다.

'자동차 혁명의 발상지'인 하이랜드파크 공장은 현재 창고로 쓰이고 있고 패커드 공장은 폐허로 변했다.

디트로이트 시민들은 현재의 '빅3'가 앞으로 10~20년 뒤 이들처럼 '잊혀진 역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실제 디트로이트는 '자동차공장의 무덤'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