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IB)을 향한 출범 원년으로 삼겠습니다."

김창록 총재가 새해 화두로 제시한 산업은행의 비전이다.

장밋빛 청사진을 담은 비전이라기보다 위기 의식이 짙게 깔려 있는 경영의지라고 할 수 있다.

김 총재는 올해 금융권의 화두를 '토영삼굴'(兎營三窟)로 표현했다.

토끼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 개의 굴을 파 놓아둔다는 뜻으로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표현한 말이다.

김 총재는 "올해는 경기 둔화로 은행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가운데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과 한·미 FTA 협상 종결 등 금융시장에 '빅뱅'을 몰고 올 사건들이 예고돼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대형화 겸업화 국제화 등으로 금융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본격적인 '글로벌 금융전쟁'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글로벌 금융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그의 승부수는 '퓨전'(fusion)이다.

산업은행의 사고와 행동을 증권과 자산운용 부문까지 총괄하는 퓨전형으로 진화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대우증권과 산은캐피탈 산은자산운용 등 자회사와의 업무 연계를 강화해 종합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프라를 구축,해외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경쟁하겠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 산업은행의 정책 금융이 이슈로 거론되고 있는 것에 대해 "산업은행이 정부 소유라는 구조 때문에 산업은행이 지원하는 모든 자금을 특혜금융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산업은행의 자금조달은 대부분 금융시장에서 상업적으로 하고 있으며 자금 공급도 상업적 기반 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특혜성 금융과는 거리가 멀다"고 일축했다.

김 총재는 외부 충격과 내부 불안 요인을 극복하기 위한 한국 금융시장의 '최후의 보루'로서 산업은행의 역할도 강조했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 산업에 젖줄을 제공하고 기업구조조정을 선도적으로 수행하는 등 공공적 역할이 부여돼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이를 위해 올해 산업자금 공급 규모를 작년보다 10% 정도 늘어난 26조5000억원으로 잡고 6T 등 첨단산업과 부품·소재산업의 육성 및 지역·사회 개발 등 국가 균형발전 등에 지원할 계획이다.

또 7조원 규모의 신규 자금 공급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중소기업 종합 지원방안'을 마련,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돕는 한편 유망 서비스산업에도 6조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김 총재는 현대건설 하이닉스 대우조선해양 등의 주요 채권은행 수장으로 이들 구조조정 기업의 매각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주인찾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하이닉스는 인수자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작업을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그는 "채권단 지분이 36%이지만 매각금액이 6조~7조원에 달해 전략적 투자자를 물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채권단 지분 36%를 모두 넘기기보다는 전략적 투자자가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물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김 총재는 "경영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올 하반기 이후 적정 시점을 선택해 매각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설 매각 작업과 관련해선 "구사주에게 경영권을 넘겨줄지 여부를 적용할 첫번째 케이스로 향후 구조조정업무의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는 사안이란 점에서 결코 서두를 일이 아니다"며 "구사주 문제에 관한 찬반 여론이 많고 현대건설과 관련된 소송도 진행 중인 만큼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추진해야 할 것"이란 입장을 피력했다.

산업은행 직원들은 김 총재를 '록사마'라고 부른다.

한류스타 배용준의 이름에 일본어의 경칭 '사마'를 붙여 '욘사마'라고 부르듯이 김 총재에 대한 직원들의 애정과 기대를 담고 있는 애칭이다.

록사마 김 총재가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해 산업은행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위상을 세워나갈지 금융계가 주목하고 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