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 우리은행장(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올해는 땅을 더 넓히지 않고 층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주택담보대출 등을 통해 확보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수익증권도 팔고 신용카드 영업도 늘려 은행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것.그는 "이런 영업을 하는 데는 용적률 제한도 없다"며 "직원들에게 1등 은행이 되도록 계속 독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 행장은 지난해 국내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경쟁을 주도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경쟁 은행에서 비난이 흘러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저금리를 제시해 아파트 집단대출을 많이 따냈다.

중소기업 거래처도 늘렸는데,특히 주요 시중은행들의 거래처를 많이 뺏아왔다.

그는 이를 '실지(失地)회복'으로 표현했다.

"(우리은행의 모태인)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1985년 시장점유율은 35%였는데,국민은행을 제외한 경쟁은행의 시장점유율은 한자릿수였다. 하지만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에다 평화은행까지 합쳐 탄생한 우리은행의 2005년 시장점유율은 13%로 쪼그라들었다.

신한과 하나가 시장을 가져가는 줄도 모르고 은행 자산이 매년 조금씩 늘어나는 것에 만족하다가 당한 셈이다.

예전에 신한 하나은행이 금리를 싸게 제시해 우량고객들을 빼앗아가 우량은행 소리를 들었는데,이번에 우리가 그것에 대해 답한 것으로 보면 된다."

황 행장은 우리은행장에 선임된 이후 이뤄낸 가장 큰 성과로 "직원들에게 무한경쟁의 마인드를 심어줬다"는 점을 꼽았다.

"은행은 규제산업이기 때문에 좌우로 정렬해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는데,내가 온 뒤로부터 우리은행 직원들은 은행업이 뺏고 빼앗기는 산업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은행들도 국내에서 무한경쟁을 벌이다보면 경쟁력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고,경쟁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세계적인 은행이 탄생할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구체적인 사례로 UBS와 크레디트스위스 ABN암로 ING 등을 들었다.

"이들 은행은 나라가 작지만 내부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거친 덕분에 도매금융과 같은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예컨대 UBS는 투자은행 부문에서 씨티은행과 JP모건,BOA 등을 제치고 전 세계에서 톱클래스로 가고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삼성전자,금성사(현 LG전자)가 국내 시장을 놓고 생존을 건 사투를 벌이다보니 국내에서는 엄청난 적자를 봤지만,세계시장에서 통하는 경쟁력을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국내 은행들도 생사를 건 전투를 벌여야 한다."

황 행장은 "우리은행이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고객에게 공격적인 금리를 제공하면서 고객을 빼앗아온 것은 최근 2년 사이의 일"이라며 "주거래은행이랍시고 (부도위기를)다 틀어막아주고 끌어안았는 데도 거래선을 (신한 하나에) 다 빼앗겼던 것을 되찾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 간 전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얘기다.

그는 우리은행이 세계 일류가 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을 하는 대신 '한국민의 특성'을 거론했다.

"옛날 계(契)는 목돈을 미리 받으면 나중에 돈을 많이 내야 하는 식의 금융개념이 들어 있었다.

사금융은 굉장히 활발했던 것이다.

내기골프가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곳도 없다.

게임룰이 단순한 고스톱을 마작보다 재미있게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민족이다.

파생금융상품에도 굉장한 재능이 있다고 본다."

그는 금융업에 자질이 있는 우리 민족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금융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가 완화되면 앞으로 10년간 은행들의 이합집산이 벌어지면서 강한 은행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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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52년 10월 경북 영덕 출생 △서울고,서울대 졸업 △1975년 삼성물산 입사 △1981년 영국 런던 경제학스쿨(LS E) 석사 △1986년 뱅커스트러스트은행 도쿄지점 국제자본시장부 부지점장 △1994년 삼성전자 자금팀장 △1998년 삼성생명 투자사업본부장 △1999년 삼성투자신탁운용 사장 △2001년 삼성증권 사장 △2004년 우리금융그룹 회장 겸 우리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