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12%→5%'(금리) '204억달러→2342억달러'(외환보유고) '-6.7%→5.0%'(경제성장률) '5170억달러→8771억달러'(국내총생산)

1997년 말 외환위기 때와 현재(2006년 말 기준)를 비교한 수치들이다.

지표상으로는 성공적으로 환란을 극복하고 성장 궤도로 접어든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수출이 3000억달러를 돌파하고 외환보유고가 넘쳐나지만 투자와 소비부진에 따른 성장동력 상실이라는 새로운 위기를 맞았다.

가계부채가 급증한 가운데 환율불안과 경상수지 악화로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경제 위기 10년 주기설'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잃어버린 10년'

외환위기는 우리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투명성을 높여줬지만 지나친 규제와 성급한 글로벌 스탠더드 도입으로 '기업가 정신'을 없애는 부작용을 낳았다.

LG경제연구원 이철용 연구위원은 "IMF(국제통화기금)가 한국에서처럼 과도한 변화를 요구하고 우리처럼 잘 받아들인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해서 모두 우리 실정에 맞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차입경영을 통해 외형성장만 추구하던 잘못된 경영방식은 바뀌었지만 리스크(위험)를 떠안으려 하는 기업가 정신이 사라져 투자 부진이라는 후유증을 낳았다"며 "과거 우리 경제를 이끌었던 활력과 적극적인 투자,위험을 피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 등을 되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는 외국 자본의 냉혹함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도 됐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용기 박사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로 유입된 외국 자본들이 일자리 창출과 선진기술 및 경영기법 전수 등을 통해 국민경제에 기여했는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외환위기 직후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 등이 헐값에 외국인 손에 넘어가는 등 매출 1조원이 넘는 국내 제조업체 130여개 중 20개가량이 외국계를 새 주인으로 맞았지만 성공적인 외자유치로 꼽히는 사례는 거의 없다.

부채비율과 BIS(국제결제은행) 비율을 맞추기 위해 국내 기업들을 '떨이'로 넘길 수밖에 없었던 상황 탓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직·간접적인 투자를 한 외국계 자본들이 100조원 이상의 차익을 얻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0년 전과 비슷한 현재

혼란스러운 국내외 여건과 정치·사회적 환경이 10년 전과 비슷해 위기 재발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558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로 인한 가계발(發) 경제 위기론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을 정도다.

외환위기가 '일시적 위기'였다면 현재의 위기는 '만성적 위기'(LG경제연구원)라는 진단도 나온다.

실제 올해 경제 상황은 심상치 않다.

수출과 소비의 동반 부진으로 경상수지가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것(삼성경제연구소)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왔다.

경제성장률은 외환위기 후유증을 앓았던 김대중 정부 때보다 더 추락해 실업난과 소비 침체 등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고유가와 원화강세로 주력 수출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북한 핵실험으로 촉발된 지정학적 리스크와 대통령선거 정국으로 인한 혼란이 우려된다.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세대 간,계층 간,보혁 간 갈등이 지금처럼 최고조에 이른 적은 없었다.

재계 관계자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2년 신용카드 버블 등도 대선을 앞두고 정치 논리가 기승을 부리면서 터졌다"면서 "외환위기 이후 추진했던 기업 금융 공공 노사 등 4대 부문 개혁 중 가장 미진한 공공 및 노사부문을 강도 높게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