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총리는 26일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 실패'발언으로 촉발된 두 사람 간의 갈등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꼈다.

거듭 되는 질문에 "당분간은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고 전 총리가 사과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말에 즉답은 피했지만 "참여정부의 독선과 무능이 실패를 불러왔다""국민과의 소통에 소홀했다""국민을 실험대상으로 삼아선 안된다"는 등 현 정권을 겨냥한 답변에서 대통령의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표정이 짙게 묻어났다.

그는 지지율이 3위로 추락한 데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는 "정부 여당에 대한 국민 평가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이 여권 후보로 비추면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면서 "앞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안정치세력이 형성되면 인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검증 받은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해 국민들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인터뷰 = 김형배 정치부장 ]

경제 - 기업상속세 재검토 출총제 폐지해야

-현재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고 해결 방안은.

"일자리가 부족하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성장 잠재력이 떨어져 국민들이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대학 개혁,노동시장 유연성 제고,획기적 규제개혁 등을 추진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중 가장 실패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경제개혁은 소홀히 한 채 극심한 이념 대결과 정치 불안을 초래해 기업 환경을 악화시켰다.

또 시장 원리를 무시한 대증요법적 부동산 정책 남발로 주택가격 폭등을 불러왔다."

-한국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크게 위축됐다는 지적이 많은데.

"급속한 저출산과 고령화로 우리 경제는 더 이상 요소 투입 위주의 성장은 어렵게 됐다.

이제는 혁신 주도의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지속적인 기술 혁신과 효율적인 시장질서,인적자원 양성이 필요하다."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대기업 규제에 대한 견해는.

"출총제는 폐지해야 한다.

졸업 기준을 오래 전에 정했는데 그 기준을 충족하니까 다시 기준을 올린 것이다.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폐지한 뒤 부작용이 나오면 사후에 대응 조치를 강구하면 된다."

-국내 대기업들이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M&A 시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국내기업에 역차별을 주는 것은 막아야 한다.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선진적 M&A 제도와 적대적 M&A 방어 장치 도입을 다각도로 강구해야 한다."

-기업들 사이에선 현행 상속세 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재벌들의 편법 상속 문제는 많이 없어졌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 부동산 - 수도권에 '과밀세' 부과 환매조건부 도입해야 ]

-정부가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해 보유세와 양도세를 대폭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세 부담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세율과 과표를 모두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특히 1가구 1주택자 중 고령 저소득 장애 등의 이유로 보유세를 납부하기 곤란한 사람에 대해서는 세금을 경감해 주거나 납부를 연기시켜 주는 등의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

장기 보유 실수요자에 대해선 양도소득세 특별공제제도 폭을 늘려야 한다."

- 국토 면적에 비해 택지나 공장용지 등으로 쓸 수 있는 가용용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토지 이용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국토계획법상 관리지역을 계획·생산·보존지역으로 조속히 지정하고 특히 계획관리지역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제2종 지구단위 계획구역을 지정하는 최소 단위의 경우 30만㎡ 이하여도 기반시설 확충 계획이 수립된 지역은 주택건설을 허용해야 한다."

-수도권 규제 완화에 대해선.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살 수 있는 지역발전 '조장(enabling) 정책'을 펴야 한다.

수도권을 동북아 비즈니스 거점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우선 물리적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

대신 수도권에 '과밀세'(종합부동산세,소득세)를 부과해 지역균형 특별회계 재원을 마련하고,이 재원으로 낙후지역에 투자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서민 주거안정과 집값 안정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비교적 현실성이 있는 환매조건부 분양제를 도입해야 한다.

토지임대부 분양제는 택지 확보 문제와 재정 부담 때문에 현실성이 적다.

분양원가 공개의 경우 민간아파트에 대해선 일반에 공개하는 게 아니라 시·도별,시·군별 분양가 검증위원회에서 검증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과잉 유동성이 집값 급등의 요인인 점을 감안,금융시장이 부동자금을 흡수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를 적극 완화해야 한다.

서울의 경우 신도시 건설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용산 영등포 청량리 상암 등 서울의 부도심에 대한 권역별 종합계획을 세워 고급 주거단지와 업무·교육시설을 함께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 교육.정치 - 3不 정책 기조는 유지 사학 자율선발은 확대 ]

-현행 교육정책의 핵심은 3불(不),즉 고교등급제 본고사 기여입학제 등에 대한 규제다.

적절하다고 보나.

"3불 정책의 기조는 유지하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를 이원화해 사립학교에 대해서는 자율성을 줘야 한다.

사립학교에 대해선 평가를 주기적으로 실시해 결과를 공개하고,취약학교에 대한 책임 소재를 규명해야 한다.

본고사는 고교 교육을 파행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본고사로 학생을 선발하는 세계적 명문대학은 없다.

대학이 고교 생활기록부를 신뢰할 수 있도록 고교 학력관리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신당 추진이 계획했던 것보다 늦춰지고 있다.

추진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원탁회의 구성 시기를 당초 12월 중·하순이라고 했지만 여기에 구애받지 않고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진행하겠다.

추진력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각 당 내부 사정이 복잡한 상황을 고려해 일정 시점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개인적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그 문제에 대해선 당분간 이야기하지 않겠다."

-현 정부의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정책을 결정해 수행하는 과정에서 국민들과의 의사소통에 소홀했고 협조를 얻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참여정부의 독선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무능,두 가지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참여정부의 인사에 대해 '코드인사''회전문 인사'란 지적이 많은데.

"참여정부 초기에는 인사시스템이 잘 작동됐다고 생각한다.

근래에 와서 시스템 인사가 안되는 것 같다."

-참여정부의 남은 1년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

"독선적인 사고를 버리고 국민들의 목소리에 경청하길 바란다.

특히 민생경제를 회생시키는 데 전념했으면 한다.

"정리=강동균·사진=김정욱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