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기행] (17) 경북 상주 카르투시오수도원 ‥ 날마다 하느님 만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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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전에는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없고 저녁에는 빵과 음료수만 먹는다.
제대로 갖춘 식사라고는 조그만 창구를 통해 들어오는 점심 한 끼뿐.그나마 육식은 엄격히 금지되고 매주 금요일엔 물과 빵으로만 식사해야 한다.
머리는 스님처럼 짧게 깎고 하루 세 번 미사와 기도를 위해 성당에 가는 것 외에는 모든 시간을 독립된 방에서 홀로 지내야 한다.
텔레비전·신문·라디오 등을 보고 듣는 것은 물론 편지도 주고받지 못한다.
일생 동안 계속되는 기도와 독거(獨居),침묵과 고독의 시간뿐….경북 상주시 모동면 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6㎞가량 떨어진 산속에 이렇게 생활하는 수도원이 있다.
1999년 한국에 들어와 지난해 1월 이곳에 수도원을 짓고 축성식을 가진 카르투시오수도원이다.
초행길을 염려하며 길안내를 맡아준 천주교 안동교구 안상기 신부와 함께 모동면 반계리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비포장길을 2㎞쯤 들어가자 산속에선 공사가 한창이다.
수도원 앞쪽에 임시로 와서 생활할 카르투시오수녀회가 조립식 건물을 짓는 중인데,공사장 너머로 수도원이 보인다.
수도원 건물은 기다란 ㄱ자형이다.
한쪽은 성당과 회의실,도서실,주방 등 전례 및 공동생활 공간이고 다른 쪽은 수도자를 위한 독방들을 긴 회랑으로 연결한 공간이다.
프랑스에 모원(母院)을 둔 카르투시오회는 침묵과 고독 속에서 독거생활을 가장 중요한 생활양식으로 삼는 수도회로,유럽에서도 규칙이 엄하고 생활 조건이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현대사회의 온갖 편리함을 뒤로하고 외진 산골에서 생활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렵고 불편한 삶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우리의 목적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되는 것입니다.
유럽에선 우리 수도회가 혹독한 수도회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혹독하기로 말하자면 트라피스트회가 더하지요.
카르투시오회가 지향하는 것은 고독의 삶을 통한 하느님과의 일치입니다.
고독이라는 여건이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지요."
수도원 회의실에서 마주한 수도원장 장 폴 신부의 설명이다.
장 폴 신부는 1999년 미셸 신부와 함께 한국에 와서 수도원을 창설한 주역이다.
1955년 카르투시오회에 들어와 50년 이상 수도생활을 한 그는 "고독 속에서 행복하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에게 고독은 괴로움이기 십상인데 어떻게 그는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의 고독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완전한 자기 증여와 헌신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고독한 삶이 혹독한 면을 지니게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수도자들에게 강조되는 순명(順命)은 순수한 자기 포기를 뜻하는데 우리 회헌에는 '종신서원을 한 수도승은 자기 자신은 물론 산책할 때 쓰는 지팡이 하나도 소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마저도 소유할 수 없을 만큼 자기를 포기하고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점차 기쁨이 내면화돼요.
딱히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 자신의 존재와 믿음이 일치되고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것을 경험하게 되지요."
처음 들어온 수련자의 경우 내적으로 민감해서 영적 기쁨과 메마름의 상태가 교차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쁨과 메마름,좋음과 나쁨의 차이가 줄어들고 내면세계가 깊게 가라앉아 안정된다고 한다.
수도원은 이를 위해 건물 구조부터 '고독한 형태'로 만들어 놓았다.
성당과 회의실 도서실 작업실 등 공용 공간 외에 수도승마다 독립된 은수처(隱修處)를 갖도록 해 놓은 것.여덟 채의 은수처는 산책 및 노동을 할 수 있는 정원과 작업실,침실 등을 갖춘 독립적 공간으로 봉쇄돼 있고 각 은수처는 하나의 기다란 복도로 연결돼 있다.
수도자의 생활은 거의 대부분 이 은수처에서 이뤄진다.
하루 종일 그 안에서 기도하며 지내고 성당에서 하루 세 번 공동기도를 드릴 때만 나왔다가 들어간다.
일요일 오후 2시의 공동체 휴식,월요일 오후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공동 산책 외에는 모두가 혼자만의 시간이다.
점심식사도 주방에서 날라온 철가방을 출입문 옆의 창구로 넣어주면 방에서 혼자 해야 한다.
은수처에 들어서면 작은 복도를 지나 '아베마리아'라고 부르는 작업실 옆의 방으로 연결된다.
작업실을 아베마리아라고 부르는 것은 수도승들이 외출 후 돌아오면 창가의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성모송을 바치며 기도한 후 방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외출 후 어머니에게 '反必面(반필면)'하는 것이다.
공구대와 작업대를 갖춘 작업실에는 노동을 위한 도구들이 준비돼 있다.
또한 크지 않은 방에는 침대와 책상,책꽂이,기도대와 식탁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수도자들의 일과는 빠듯하다.
오전 6시30분에 기상하면 기도와 미사,손노동과 공부,청소와 정리,독서와 개인묵상 등이 쉼 없이 이어진다.
특이한 것은 잠을 두 번 나눠 자야 한다는 것.끝기도와 묵상 후 저녁 7시30분 취침하면 자정에 일어나서 두세 시간 밤기도를 드린 다음 새벽 3시에 다시 취침한다.
그렇잖아도 수도원 입회자가 줄고 있는 마당에 이렇게 힘든 수도원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
"하루에 잠을 두 번 나눠서 자고,육식을 하지 않고,저녁에는 빵만으로 식사하지만 힘든 것은 그게 아니라 고독한 삶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필요한 고독의 삶은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소수였고,늘 그렇게 유지해 왔거든요."
현재 이 수도원의 수도자는 장 폴·미셸 신부와 독일인 신부·수사 각 1명,한국인 수련자 2명 등 모두 6명이다.
세상에서 기독교의 가르침을 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 간에는 영적 연대가 있어서 우리가 여기서 이루는 하느님과의 일치가 그리스도인 전체로 퍼져나간다"고 장 폴 신부는 설명했다.
오후 4시30분.종소리가 울리자 은수처에서 나온 6명의 수도승이 저녁기도를 위해 회랑으로 와 성당에 들어선다.
고독의 은수자들이 드리는 기도 소리가 외딴 산골에 울려퍼지는 저녁,서둘러 찾아오는 어둠마저 평화롭다.
상주=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제대로 갖춘 식사라고는 조그만 창구를 통해 들어오는 점심 한 끼뿐.그나마 육식은 엄격히 금지되고 매주 금요일엔 물과 빵으로만 식사해야 한다.
머리는 스님처럼 짧게 깎고 하루 세 번 미사와 기도를 위해 성당에 가는 것 외에는 모든 시간을 독립된 방에서 홀로 지내야 한다.
텔레비전·신문·라디오 등을 보고 듣는 것은 물론 편지도 주고받지 못한다.
일생 동안 계속되는 기도와 독거(獨居),침묵과 고독의 시간뿐….경북 상주시 모동면 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6㎞가량 떨어진 산속에 이렇게 생활하는 수도원이 있다.
1999년 한국에 들어와 지난해 1월 이곳에 수도원을 짓고 축성식을 가진 카르투시오수도원이다.
초행길을 염려하며 길안내를 맡아준 천주교 안동교구 안상기 신부와 함께 모동면 반계리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비포장길을 2㎞쯤 들어가자 산속에선 공사가 한창이다.
수도원 앞쪽에 임시로 와서 생활할 카르투시오수녀회가 조립식 건물을 짓는 중인데,공사장 너머로 수도원이 보인다.
수도원 건물은 기다란 ㄱ자형이다.
한쪽은 성당과 회의실,도서실,주방 등 전례 및 공동생활 공간이고 다른 쪽은 수도자를 위한 독방들을 긴 회랑으로 연결한 공간이다.
프랑스에 모원(母院)을 둔 카르투시오회는 침묵과 고독 속에서 독거생활을 가장 중요한 생활양식으로 삼는 수도회로,유럽에서도 규칙이 엄하고 생활 조건이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현대사회의 온갖 편리함을 뒤로하고 외진 산골에서 생활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렵고 불편한 삶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우리의 목적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되는 것입니다.
유럽에선 우리 수도회가 혹독한 수도회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혹독하기로 말하자면 트라피스트회가 더하지요.
카르투시오회가 지향하는 것은 고독의 삶을 통한 하느님과의 일치입니다.
고독이라는 여건이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지요."
수도원 회의실에서 마주한 수도원장 장 폴 신부의 설명이다.
장 폴 신부는 1999년 미셸 신부와 함께 한국에 와서 수도원을 창설한 주역이다.
1955년 카르투시오회에 들어와 50년 이상 수도생활을 한 그는 "고독 속에서 행복하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에게 고독은 괴로움이기 십상인데 어떻게 그는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의 고독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완전한 자기 증여와 헌신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고독한 삶이 혹독한 면을 지니게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수도자들에게 강조되는 순명(順命)은 순수한 자기 포기를 뜻하는데 우리 회헌에는 '종신서원을 한 수도승은 자기 자신은 물론 산책할 때 쓰는 지팡이 하나도 소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마저도 소유할 수 없을 만큼 자기를 포기하고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점차 기쁨이 내면화돼요.
딱히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 자신의 존재와 믿음이 일치되고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것을 경험하게 되지요."
처음 들어온 수련자의 경우 내적으로 민감해서 영적 기쁨과 메마름의 상태가 교차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쁨과 메마름,좋음과 나쁨의 차이가 줄어들고 내면세계가 깊게 가라앉아 안정된다고 한다.
수도원은 이를 위해 건물 구조부터 '고독한 형태'로 만들어 놓았다.
성당과 회의실 도서실 작업실 등 공용 공간 외에 수도승마다 독립된 은수처(隱修處)를 갖도록 해 놓은 것.여덟 채의 은수처는 산책 및 노동을 할 수 있는 정원과 작업실,침실 등을 갖춘 독립적 공간으로 봉쇄돼 있고 각 은수처는 하나의 기다란 복도로 연결돼 있다.
수도자의 생활은 거의 대부분 이 은수처에서 이뤄진다.
하루 종일 그 안에서 기도하며 지내고 성당에서 하루 세 번 공동기도를 드릴 때만 나왔다가 들어간다.
일요일 오후 2시의 공동체 휴식,월요일 오후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공동 산책 외에는 모두가 혼자만의 시간이다.
점심식사도 주방에서 날라온 철가방을 출입문 옆의 창구로 넣어주면 방에서 혼자 해야 한다.
은수처에 들어서면 작은 복도를 지나 '아베마리아'라고 부르는 작업실 옆의 방으로 연결된다.
작업실을 아베마리아라고 부르는 것은 수도승들이 외출 후 돌아오면 창가의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성모송을 바치며 기도한 후 방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외출 후 어머니에게 '反必面(반필면)'하는 것이다.
공구대와 작업대를 갖춘 작업실에는 노동을 위한 도구들이 준비돼 있다.
또한 크지 않은 방에는 침대와 책상,책꽂이,기도대와 식탁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수도자들의 일과는 빠듯하다.
오전 6시30분에 기상하면 기도와 미사,손노동과 공부,청소와 정리,독서와 개인묵상 등이 쉼 없이 이어진다.
특이한 것은 잠을 두 번 나눠 자야 한다는 것.끝기도와 묵상 후 저녁 7시30분 취침하면 자정에 일어나서 두세 시간 밤기도를 드린 다음 새벽 3시에 다시 취침한다.
그렇잖아도 수도원 입회자가 줄고 있는 마당에 이렇게 힘든 수도원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
"하루에 잠을 두 번 나눠서 자고,육식을 하지 않고,저녁에는 빵만으로 식사하지만 힘든 것은 그게 아니라 고독한 삶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필요한 고독의 삶은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소수였고,늘 그렇게 유지해 왔거든요."
현재 이 수도원의 수도자는 장 폴·미셸 신부와 독일인 신부·수사 각 1명,한국인 수련자 2명 등 모두 6명이다.
세상에서 기독교의 가르침을 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 간에는 영적 연대가 있어서 우리가 여기서 이루는 하느님과의 일치가 그리스도인 전체로 퍼져나간다"고 장 폴 신부는 설명했다.
오후 4시30분.종소리가 울리자 은수처에서 나온 6명의 수도승이 저녁기도를 위해 회랑으로 와 성당에 들어선다.
고독의 은수자들이 드리는 기도 소리가 외딴 산골에 울려퍼지는 저녁,서둘러 찾아오는 어둠마저 평화롭다.
상주=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