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2조원의 국고 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되는 금지금(순도 99.5% 이상의 금괴) 업자들은 금괴가 수입돼 국내에서 도매된 뒤 다시 외국 수출업체에 되돌아가는 소위 `뺑뺑이 거래' 수법을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순환 고리의 중간에 있는 `폭탄업체'가 부가가치세를 내겠다고 신고한 뒤 폐업하면 금괴는 계속 유통되다가 외국업체로 다시 수출되고, 이 때 국세청이 수출업체에 환급해 주는 세금을 순환 고리에 있는 모든 업체가 나눠갖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뺑뺑이 거래'

생산자-도매업자-수출업자-해외업체로 이어지는 정상적인 해외 수출거래라면 도매업자와 수출업자가 일정 비율씩 부가가치세를 부담해야 한다.

부가가치세는 매 단계마다 물품 가격에 반영돼 누적되기 때문에 수출업자는 해외업체에 물품을 팔 때 자신이 내야 할 비율 이상의 세금은 국세청으로부터 공제받는다.

검찰에 적발된 금지금 유통 조직은 외국업체-수입업체-1차 도매업체-폭탄업체-2차 도매업체-수출업체-외국업체로 이어지는 다소 복잡한 순환 구조를 갖고 있다.

`뺑뺑이 거래'로 불리는 이 순환 구조에서 외국업체로부터 금괴가 수입되고 1차 도매업자가 폭탄업체에 금괴를 넘기는 단계까지는 면세 거래가 이뤄진다.

이는 해외에 수출될 물품이라는 점이 확실하다면 국내 유통 과정에서도 부가가치세를 부과하지 않는 영(0)세율 제도를 악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먼저 1차 도매업자 등은 금지금 구매가 `외화획득용 원료 거래'라는 취지로 계약서를 꾸며 은행에 보여준 뒤 면세거래를 허용하는 증빙서류인 구매승인서를 발부받았다.

폭탄업체는 부가가치세가 매겨지지 않은 채 유통돼 오던 금지금을 구입한 뒤 갑자기 국내용 금괴 거래인 것처럼 과세당국에 부가가치세를 내겠다고 신고한다.

그리고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2차 도매업자에게 금괴를 팔았다.

폭탄업체가 전단계까지 쌓인 세액을 다 내겠다고 신고하고 물품마저 싸게 넘기는 등 손해를 몽땅 뒤집어쓴 뒤 폐업하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2차 도매업체 이후부터는 외견상 단계별로 부가가치세가 과세되는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진다.

하지만 이미 폭탄업체 단계에서 금괴 가격이 낮춰졌고 과세신고도 됐기 때문에 2차 도매업체가 국세청에 내는 세금은 매우 적다.

수출업체는 외국업체에 금괴를 최종적으로 수출하면서 국세청으로부터 폭탄업체 등 전 단계 업체들이 냈을 것으로 추산되는 세금 만큼을 되돌려받고, 이 환급액을 순환 유통에 참여한 모든 업자들이 나눠갖는다.

당초 금괴를 국내 수입업체에 팔았던 외국업체는 이 과정을 거친 금괴를 수출 당시보다 헐값에 다시 손에 넣는다.

해외업체에서 국내로 들어온 금괴가 다시 해외업체로 돌아가면서 금괴의 가격은 낮아지고 국세청으로부터 나온 `눈먼 돈'을 국내외 업자들이 나눠갖는 범행이 수년간 버젓이 저질러졌던 것이다.

◇국내 업체간 거래ㆍ자료조작 거래

이 순환고리에 해외업체 대신 국내 대형 도매업체가 자리 잡은 형태의 탈세 범행도 적발됐다.

대형 도매업체-1차 도매업체-폭탄업체-2차 도매업체-대형 도매업체로 이어지는 고리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폭탄업체가 세금을 포탈하고 대형 도매업체가 환급받은 세액을 업체끼리 분배하는 방식이다.

이 밖에도 밀수한 금지금을 해외에 수출하면서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금지금을 매입해 외국업체에 수출하는 것처럼 세금계산서를 위조해 국세청으로부터 돈을 환급받은 사례도 적발됐다.

◇`뺑뺑이' 전모 드러나면서 유죄 인정

`뺑뺑이 거래'는 폭탄업체가 과세 신고를 하기 때문에 법원이 폭탄업체의 세금 미납을 `체납'으로 인정하고 관련 업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례가 종종 있었다.

이에 따라 송무를 담당하는 서울고검과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등은 특별 대책본부를 편성해 유관기관과 협조해 순환고리의 전모를 밝혀냈고 올해 8월 대법원에서 관련 업자에 대해 최초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다.

폭탄업체의 과세신고가 나중에 국세청에서 환급받은 돈을 나눠가질 목적으로 서류상 증거를 만들어 놓은 것이고 유통 과정에 연루된 모든 업체들이 긴밀하게 범행을 공모했다는 점이 최고 법원에서 인정된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안 희 기자 prayer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