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제 무슨 진전이 있었느냐고 물으면 답변이 어렵다.

그러나 1차 협상 때와 비교하면 꽤 큰 진전이 있었다.

다른 협상보다 진전이 빠르다."


김종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국측 수석 대표가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몬태나에서 5차 협상을 마친 뒤 한 말이다.

난관 속에서도 타결을 위한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는 얘기다.

당초 한국은 무역구제(반덤핑),미측은 의약품 자동차에서의 진전을 5차 협상의 목표로 삼았다.

한국측이 반덤핑 양보를 유도하기 위해 이들 3개 분야 협상을 중단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이들 핵심 분야는 꽉 막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가 풀리면 연쇄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구도가 형성되는 과정이라는 게 협상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미측 반덤핑 개선 수용시 핵심쟁점 '물꼬'


5차 협상의 특징은 양국이 가장 큰 관심을 가진 무역구제 자동차 의약품 등 3개 분야의 협상이 중단된 것이다.

중요한 만큼 물러설 수 없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내 것을 갖기 위해 남이 원하는 것을 주는 '주고받기'가 쉬울 수 있는 분야다.

미국이 연말까지 한국의 반덤핑 관련 요구를 수용한다면 한국은 의약품에서 미국 요구를 일부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이 두 분과는 사실상의 협상 데드라인이 올해 말로 똑같다.

또 미측의 자동차 관세 즉시 폐지와 한국측의 배기량 기준 자동차 세제 개편은 연계돼 풀릴 수 있다.

협상단 관계자는 "협상은 결국 패키지로 이뤄진다"며 "미측이 무역구제에 대한 협상 여지를 살려 둘 경우 다음 6차 협상에선 각 분과가 패키지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분과 차원의 패키지에 포함되지 않는 핵심 쟁점은 큰 그림과 연계해 7,8차 협상에서 타결한다는 계획이다.


○상품 지식재산권 등 진전

5차 협상에선 상품 서비스 지식재산권 등에서 진전이 이뤄졌다.

상품 분과에선 미측이 TV 카메라 피아노 등 206개,한국은 플라스틱 제품 등 204개 품목의 관세를 즉시 철폐하기로 했다.

물품수 기준 즉시 철폐율은 미국이 77.4%→80.3%로,한국이 80.1%→82.5%로 높아졌다.

미국은 또 외국 화물에 부과하는 물품취급 수수료도 없애기로 해 한국 수출업체는 연간 4700만달러의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됐다.

지식재산권 분과에선 미측이 저작물의 병행수입 금지 요구를 철회했으며 금융 서비스에선 보험중개업의 개방 범위를 재보험 등 기존 개방 분야에 한정한다는 우리측 입장이 관철됐다.


○양국 레임덕,협상의 변수

문제는 양국의 정치 상황이다.

한국은 노무현 대통령의 레임 덕이 본격화됐으며 미국도 민주당의 상·하원 장악으로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이 위기에 처했다.

이는 협상단의 입지를 필연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

양국 대통령의 힘이 빠질 경우 막판 '빅딜'을 위한 정치적 결정이 이뤄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8일 "협상 타결을 다음으로 넘기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밝히는 등 여당 지도자가 잇따라 '협상 연기론'을 제기,협상단을 당황케하고 있다.

협상단 관계자는 "결국 협상의 마지막 딜은 정치적 결정인데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협상을 잘해도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특히 협상이 시한인 내년 3월을 넘길 경우 모멘텀을 잃고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빅스카이(미 몬태나)=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