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허구한 날 형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날 새요?"(인구)

"사랑? 결혼? 그 배부른 생각 꿈도 꾸지 마."(혜란)

변승욱 감독의 멜로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에서 두 주인공은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이렇게 퍼붓는다.

인구는 정신지체 장애인 형 때문에 결혼에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아버지가 남긴 빚 5억원을 갚아야 하는 혜란은 결혼하려는 여동생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녀는 심지어 임신한 여동생에게 아기를 뗄 것을 요구한다.

동네 약국 약사인 인구와 명품을 모방하는 '짝퉁 디자이너' 혜란에게 사랑은 사치일 뿐이다.

그들에게 사랑의 장애물은 다름아닌 가족이다.

이 작품은 가족구성원의 실수와 흠결로 결혼하기 어려운 상황을 다룬 멜로영화.연애 상대의 신분 차이로 가족과 갈등하는 통속 멜로물과는 차별화된다.

극중에서 가족이란 멍에는 타인을 향한 주인공들의 태도에도 영향을 끼친다.

인구는 무뚝뚝하고 자주 짜증을 낸다.

혜란은 상처를 주는 막말을 내뱉고 이웃과 머리채를 붙잡고 싸움판을 벌이기도 한다.

이처럼 어둡고 부정적인 면모는 밝고 예쁘게만 그려져 왔던 기존 멜로영화 주인공들과는 다르다.

배우들의 연기는 줄거리만큼이나 사실적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 8년 만에 멜로영화에 출연한 한석규는 상대방의 처지를 조심스럽게 헤아리는 속 깊은 매력남을 연기했다.

인형 같은 외모와 여린 면모의 '멜로퀸' 김지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미지를 선보인다.

'여자 정혜'와 '러브토크''가을로' 등에서 청순가련형에 가까웠다면 여기서는 솔직하면서도 악착 같은 여성상을 보여준다.

다만 지나치게 사실적인 상황과 연기는 상업영화들에 강조되는 사랑의 팬터지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때문에 이 영화는 20대보다는 30대 관객에게 더 큰 호소력을 발휘할 듯하다.

30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